뿌리 깊은 미국 고관세 정책, 1828년 시작됐다

입력 2025-09-26 00:15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여러 차례 시행했다. ‘위험한 미국사’는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트럼프 시대를 고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 한마디에 전 세계는 요동친다.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보였던 한미 정상회담 열흘 만에 300여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구금되는 사태는 트럼프 집권 이후 혼돈과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 시대를 맞아 ‘트럼프 현상’을 점검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위험한 미국사’는 미국의 역사라는 큰 흐름을 통해 트럼프의 시대를 해석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미국사를 모르면 트럼프 현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트럼프가 ‘이단아’인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역사의 맥락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 이전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1828년에 시작된 고관세 정책은 미국 북부 지역의 제조업 성장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농업 중심의 남부지역은 원자잿값 상승과 곡물 수출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크게 반발했다. 북부와 남부의 이해관계 충돌은 1861년 남북 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미국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외 철강 섬유 등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1890년 ‘매킨리 관세법’은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생활비 부담을 키우며 내수 시장 위축을 불러와 1893년 대공황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평균 관세율을 60%까지 끌어 올렸던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미국의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유럽 경제에도 심각한 불황을 몰고 와 독일의 나치가 세력을 확장하는 토양이 됐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은 뿌리가 깊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 이민자가 대거 미국으로 몰리자 반이민주의 정당인 ‘미국당’이 등장해 앵글로색슨 중심의 인종 차별주의를 공공연히 내걸기도 했다. 1882년에는 중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금지했던 ‘중국인 배척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미국 외교 정책의 출발은 고립주의였다. 유럽의 전쟁이나 내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외교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 개입주의로 전환됐고 이후 ‘글로벌 리더십’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정책이 한동안 유지됐다.


저자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외교 전통을 완전히 부정하는 파괴자가 아니라 ‘변화와 반발’이라는 또 다른 변주를 만든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미국 남부의 보수주의자들이다.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저자는 진영 간 갈등의 시작은 미국 건국 때부터 늘 존재해 왔다면서 트럼프 시기에 갈등이 더 격렬해진 것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정보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될까. 저자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밝힌다. 첫째,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언론과 개인이 정부 정책이나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둘째, 건국 초기부터 확립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의회,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의 권한을 감시하고 제한함으로써 어느 권력 기관도 과도하게 힘을 갖지 못하도록 막는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조직의 부패나 불법 행위를 폭로하는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강한 시민 의식과 활발한 정치 참여가 계속되는 한 미국에 독재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