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發) 관세 파고로 수출 지형이 급격히 달라지면서 정부가 아세안(ASEAN), 중남미 등과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 무역 협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 말레이시아 태국 등과 맞춤형 ‘1대 1 FTA’를 추진하고, 일본 멕시코 등 12개국이 속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 방침도 5년 만에 공식화했다. 과거 미·중 위주의 수출 구도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신흥 시장과 새로운 경제 동맹을 구축해 돌파구를 모색한다는 취지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통상 당국은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일정으로 서울에서 ‘한·태국 포괄적경제협력협정(CEPA) 제7차 협상’에 돌입했다. FTA 일환인 CEPA는 상품 관세 철폐와 경제 협력을 포괄하는 협정이다. 이번 7차 협상에서도 상품·서비스·투자·디지털·금융 등 7개 분야의 시장 개방·협력 강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지난해 7월 시작된 태국과의 무역 협상은 애초 경제동반자협정(EPA)으로 출발했지만, 경제 협력 논의를 보다 넓히기 위해 지난달에 태국 측과 협정 명칭을 CEPA로 확대하기로 서로 합의했다.
최근 정부의 통상 협력 추진은 아세안 등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국) 시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 통상 당국은 태국과 함께 말레이시아와의 FTA도 조속히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2007년 한·아세안 FTA 발효로 아세안 10개국과 다수 품목 관세가 철폐된 상태지만, 개별 국가와 별도의 FTA로 협력 관계를 더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일 에콰도르와 자동차·K-푸드 등의 관세를 철폐하는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을 맺고 국회 비준 등 잔여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미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 해법으로 CPTPP와 같은 ‘메가 FTA’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최근 ‘미 관세 협상 후속 지원 대책’에 CPTPP 가입 검토 방침을 담으며 “유사 입장국 간의 경제 동맹 네트워크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CPTPP 가입 시 국내총생산(GDP) 0.38% 포인트 상승효과와 더불어 CPTPP 가입국인 멕시코의 ‘최대 50% 관세’ 엄포에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성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CPTPP 가입 시 12개국과 관세 철폐는 물론 디지털, 지식재산 등 무역 전반의 개방 효과로 미·중 의존도 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무역 협정 체결에 따른 농수산업 등 취약 업종의 피해 우려는 여전한 과제다. CPTPP 회원국의 농산물 관세 철폐율은 96% 수준으로 한국의 FTA 평균 관세 철폐율 79.1%를 크게 웃돈다. 문재인정부 당시인 2021년에도 CPTPP 가입 검토가 추진됐지만, 농민 반발 및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논란 끝에 흐지부지됐다. CPTPP 가입을 위해선 일본 등 기존 회원국의 컨센서스(일치된 동의)가 필수적이다. 아세안과의 CEPA 체결도 각종 과일과 수산물, 저가 목제 제품 등의 수입 확대에 따른 관련 업종 피해가 걸림돌로 꼽힌다.
정부 관계자는 “(CPTPP 가입 등에) 관계 부처 간 논의가 구체화한 단계는 아니다”라며 “농수산업 등 취약 분야 지원 대책 및 이해 관계자와의 소통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