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어쩔 수가 없다

입력 2025-09-27 03:03

신작 영화를 개봉일에 보는 걸 좋아한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누리기 시작한 소확행 중 하나이다. 지난 수요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조조 관람으로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은 최고의 블랙코미디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급이고 미장센도 배경음악도 ‘깐느 박’이라는 존칭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만큼 존경스러웠다. 연거푸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웃기다니, 희비극의 미학에 감탄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은 변명이나 핑계에 가깝다. 우리는 자기합리화를 할 때 주로 이 말을 쓴다. 세상은 번번이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나와 가족의 안위를 위해 눈을 질끈 감는다. 세파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일단 살아남고 보자.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남을 위해 죽으신 분을 구원자로 믿으면서 내 한 몸과 내 가족을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 산다. 어쩔 수가 없다고 고개를 흔들며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인가. 블랙코미디라도 자주 봐야겠다.

정혜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