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에 앞장선 마르틴 루터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입니다. 성직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자 제사장이라는 게 요지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이 교리를 따릅니다. 그렇지만 일각에선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교회도 목회자와 평신도로 직분이 나뉘던데, 이 역시 일종의 계층 아닌가요.” 아무래도 ‘평신도보단 목회자가 더 거룩한 직분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평신도를 깨운다’(국제제자훈련원)의 저자 고(故) 옥한흠(1938~2010)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는 한국교회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이 도식에 철퇴를 가합니다. “평신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라이코스’는 대중을 뜻하므로, 결국 평신도는 ‘믿는 자의 공동체’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부름 받은 점에서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옥 목사가 이토록 강력하게 말한 건 평신도를 사역 동반자로 바라보지 않는 풍조가 교회 내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이자 교회 공동체 그 자체”라며 “교역자 또한 이 공동체에 포함된 일원”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종은 곧 평신도의 종(고후 4:5)”이라고도 합니다.
옥 목사가 평신도의 본뜻을 밝히며 교역자와의 관계도 재조명한 건 “평신도가 바로 서는 데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신도 사역을 전개하게 된 배경이자 한국교회의 문제로 ‘3허(三虛)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 3허란 ‘허수(虛數)’ ‘허세(虛勢)’ ‘허상(虛像)’입니다.
옥 목사는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에 오염돼 교인 수 등 통계치를 두 세배 과장해 말한다”며 교계의 허수 문화를 지적했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한 영혼의 가치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므로 회중 크기로 교회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 기독교인이 포진돼 있음에도 그 영향력이 미미한 걸 두고는 ‘허세’라고 꼬집었습니다. ‘허상’은 한국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가 신앙과 삶을 일치하지 못해 불신자와 차이가 없이 사는 현상을 뜻합니다. 옥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에 비치는 이미지는 ‘너나 나나 매한가지’라는 것”이라며 “신앙은 삶이요, 삶은 곧 신앙임을 증명할 수 있는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평신도를 제자로 세우는 데 목숨을 건 그는 교회의 역할 역시 재정의합니다. “지상 교회는 세상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교회 내 역할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 가운데서 각자의 소명을 실천하라는 요청입니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옥 목사가 제시한 게 ‘제자훈련’입니다. 최근 이 책으로 설교한 김병삼 목사는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고백한 모든 이가 예수님의 제자”라며 “‘제자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내내 미완성으로 남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제자훈련을 강조한 고인의 교훈을 새겨 평생 주님을 닮기 위해 힘쓰자”고 말했습니다.
1984년 첫 출간 이후 100쇄를 넘긴 책은 11개국 언어로 번역되며 국내외 교회에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했습니다. 출간된 지 41년이 지난 지금도 기독교인에게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책은 고전의 반열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