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트럼프 연설,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입력 2025-09-25 00:40

집권 1기인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폭소로 시작했다. “내가 취임하고 2년 만에 미국 역사상 어느 정부보다 많은 걸 이뤄냈다”는 도입부 한마디에 각국 대표단이 앉은 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기색의 트럼프가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데, 뭐 괜찮다”는 애드리브를 한 걸 보면, 이 말은 웃음을 유도하는 농담이 아니었고 폭소는 자연발생적으로 터졌음이 분명했다. 세계 지도자들이 듣기에 그의 말이 정말 ‘웃겼던’ 것이다.

특유의 자기 자랑과 과장 어법에 팩트 오류로 점철되는 트럼프의 연설은 그때만 해도 ‘저게 무슨 소리지?’ 하며 곱씹기에 앞서 웃음부터 터지게 했다. 상식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들었을 때 ‘이건 농담이겠지’ 하게 되는 반응, 즉 황당함이 그 폭소의 배경에 있었다.

7년이 흘러 집권 2기의 유엔총회 연설에 나선 23일 그는 15분 발언 시간을 크게 넘겨 56분간 장광설을 폈다. 늘 그렇듯 자랑으로 시작했다. “내가 일곱 전쟁을 끝냈다.” “8개월 만에 17조 달러 대미 투자를 유치했다.” “범죄 수도 워싱턴에 군을 투입해 저녁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됐다.” 하나같이 부풀리고 왜곡한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후변화를 “사상 최대 사기극”이라 규정하며 국제회의에서 이를 정면 부정한 첫 지도자가 됐다. 이민과 재생에너지를 ‘괴물’로 부르면서 유럽을 향해 “두 괴물 탓에 지옥이 될 것”이라 했고, 유엔을 겨냥해선 “불법 이민자에게 서구 침략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화석연료를 더 많이 채굴하자며 “베이비, 드릴(drill), 베이비”를 외치고, 뜬금없이 파키스탄계 런던시장 얘기를 꺼내 “그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시행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등 7년 전처럼 웃음이 터질 법한 대목이 꽤 있었지만,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연설 내내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막무가내 관세와 상식 밖의 동맹 압박 등 황당한 얘기가 현실로 닥치는 걸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의 과장과 오류, 이제 웃어넘길 수 없는 실존적 위협이 됐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