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한반도 냉전 종식 방법론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어떻게든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은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 첫 글자를 딴 ‘엔드(END) 이니셔티브’로 냉전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교류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조성하고, 남북 및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를 진전시켜 비핵화까지 추동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법론은 앞서 이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3단계 방안으로 제시한 핵 프로그램 ‘중단·축소·비핵화’만큼이나 현실화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북한이 “남한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겠다”고 한 데서 보듯 현재로선 교류가 시작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 책임자가 북한에 꾸준히 관계 회복을 바라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를 바란다는 것 또한 북·미 회담을 원하는 북한에는 나쁘지 않은 메시지다. 북한이 지금은 전략적 차원에서 거칠게 반응하지만 남한의 진정성을 알리는 메시지가 쌓이다 보면 결국 태도가 바뀔 개연성도 없지 않다. ‘괌 포위사격’을 위협하다 돌연 몇 달 만에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고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게 그들이다.
다만 이번 방법론에서 남한과의 교류나 남북 관계 진전 단계를 죄다 건너뛰고 대뜸 북·미 관계 정상화나 북·미 수교 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내세우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기정사실화해 분단을 고착화할 수 있어서다. 야권 등에서 ‘엔드 이니셔티브’가 자칫 통일의 끝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교류와 관계 정상화가 비핵화를 위한 전제여야지 앞의 두 단계만 이뤄지고 비핵화는 유야무야돼서도 안 된다.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있을지 모를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 패싱이나 북핵 용인과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고 미국에 반복해서 우리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