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일, 소명과 소망

입력 2025-09-27 03:09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안 있으면 추석입니다. 잘하면 최장 10일간 휴일이라 직장인들의 기대가 무척 크죠. 다들 마음껏 논다는 기대로 기다리지만 휴일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노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미뤄뒀던 이런저런 일을 하며 분주히 보내죠. 이런 일들이 사실 직장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왜 논다고 할까요.

우리 시대는 일을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소득이 생기는 직업으로 제한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직장이 없으면 논다고 합니다. 직장 업무 외 일도 노는 것으로 여기고요. 심지어 가정주부를 집에서 논다고 했던 적도 있었죠. 힘겹게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는 이 시대 사람들이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가 드러나고 자아가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에요.

일에 대해 이러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주범이 바로 과학기술입니다. 불과 1~2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90% 이상은 농업에 종사했어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죠. 소수 특권층을 뺀 나머지 대다수 사람은 먹을 것을 생산하기 위해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했었죠.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저주가 자연에 가득했기 때문에 일생 고달프게 일해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혁명과 농업혁명이 일어났고, 일에도 큰 변화가 생겼어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게 되었고 힘든 육체노동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거죠.

우리나라는 현재 인구의 4%만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전 세계 곡물의 상당량을 생산하는 미국도 3%만이 농사를 지어요. 대다수 사람은 먹을 것을 직접 생산하는 일에서 자유로워졌죠. 대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여 살아가요. 우리나라도 인구 중 71%가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다른 선진국들도 마찬가지고요. 다수가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과학은 일을 소모한 에너지 값으로 정의하고 정량화합니다. 보통 주울(J)이나 칼로리(㎈)라는 단위에 숫자를 표시해서 말해요. 보통 육체노동은 하루에 2000㎈, 정신노동은 1000㎈의 일을 한다고 봐요. 정신 활동을 하는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도 적지는 않지만 육체노동보다는 에너지 소모량이 적어요. 적게 일하는 셈이지요. 그런데도 정신노동의 소득은 대체로 육체노동보다 높아 사람들이 선호하죠. 현대인들은 더 적게 일하고 더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 끝없이 경쟁해요. 일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스트레스와 고통이 짓누르죠.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멈추지 않는 과학기술은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직업구조를 완전히 바꾸려 하고 있어요. 인간을 육체노동에 더해 정신노동에서조차 해방하려 하는 거죠. 조만간 사무 행정 교육 의료 법률 등 각종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AI가 대체할 거예요. 교회의 목회 업무도 위협할지 몰라요. 제조업도 AI가 장착된 로봇이 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장차 많은 직업이 없어지겠죠.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고 있어요.

앞으로 직업적 일과 다른 일상 활동의 경계가 분명치 않을 듯해요. 일하는 것과 소위 노는 것의 구분이 애매해진다는 것이죠.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문화 활동, 여행 유튜브 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인간을 ‘노는 인간(호모 루덴스)’으로 정의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화적 인간을 말하는 것인데 앞으로는 이 부분이 우리 일상 활동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특정 직업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 같고요. 그러면 평생 직업이 소명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주장이 힘을 잃을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하나의 소명이 아닌 다양한 소명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아시나요. 이솝의 우화입니다. 이 우화의 요지는 부지런한 개미와 놀고먹는 베짱이를 비교하면서 부지런한 개미를 본받자는 것이죠. 그런데 곤충학자 파브르는 이 우화가 틀렸다고 해요. 곤충을 일생 관찰한 파브르는 이 세상엔 놀고먹는 게으른 곤충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요. 놀면서 노래나 부르면서 게으르게 사는 듯이 보이는 곤충도 실상은 부지런히 일하면서 살죠. 혹시 AI 시대 우리의 모습 아닐까요.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AI 시대는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리 두려워할 일은 아니에요. 아무리 노동에 대한 개념이나 형태가 달라진다 해도 인간은 생존을 넘어 창조 세계를 돌보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살도록 하셨어요. 일하는 인간이죠. 교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소명에 대한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해 보여요. 기존에 생각해 오던 많은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AI 시대에 과연 우리의 일과 우리의 소명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시대와 상관없이 소명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우리 모든 활동이 아닐까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의 목적이 온전히 드러날 그 날을 소망하면서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갑시다.

성영은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