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아이 뇌를 ‘도서관’으로 바꾸려면

입력 2025-09-25 00:37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특히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이 한 뼘 자라는 만큼 부모도 같이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비슷한 또래의 부모들과 대화하면 고민의 공약수가 잡히기도 하는데 어떤 고민은 사회적 현상과 맞닿은 예도 있다. 최근 친한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집마다 미디어 노출을 두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고민에는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째 아이를 육아할 때는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적게 하려고 노력한 ‘열혈 맘’이었다. 그런데 둘째 육아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돌봐야 할 아이가 늘어나는 만큼 부모가 신경 써야 할 포인트가 몇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퇴근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쉼이 필요할 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만화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둘째가 미디어를 보여 달라고 할 때 보여주지 않으면 떼를 쓰는 모습이 발견됐다.

아이의 반응에 심각함을 느끼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최근 책 ‘브레인 페어런팅’을 펴낸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권 소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으로는 단연 창의력과 문해력”이라며 “이런 능력을 개발하려면 독서 습관이 제일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끝에 미디어 전쟁 중인 이야기를 짧게 나누면서 그의 처방을 내심 기대했다. 그는 “미디어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미디어를 완전히 끊어보라. 힘든 시기는 길어야 일주일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내 생각으로는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권 소장은 “미디어를 끊으면 그 심심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아이들이 무슨 활동이든 할 것이니 한번 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미디어 노출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게임이나 동영상을 보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출되는데, 두뇌는 이를 부담스러워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미디어에 노출된 아이들은 두뇌의 통제 기관인 전두엽 발달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 두뇌는 오락실이 되고 책을 읽으면 도서관이 될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날부터 바로 실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힘든 진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은 이틀이었다. 사흘째부터는 엄마에게 미디어 보여달라고 조르더니 엄마의 표정을 보고 안 될 것을 알았는지 빠르게 포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만화 동영상을 본 뒤 시작한 놀이 활동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시작한 미디어 금식은 한 달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권 소장은 미디어 시청을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심심하면 아이들끼리 놀겠지만 이것도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을 지나면 다른 활동으로 환기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땀 흘려 활동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 시간도 가졌다. 특히 자연 속에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보지 말라고 잔소리만 할 게 아니라 부모부터 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자신이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권 소장의 설명이다. 물론 미디어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도 절제하기 힘든 미디어에 어린 자녀들이 최대한 늦게 노출되도록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 정보를 잘 활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나 미디어 중독이 되지 않도록 절제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전제돼야 할 것이다. AI 시대에 다음세대가 생존하려면 결국 고차원적 사고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유리할 텐데, 그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결국 부모의 선택이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셈이다.

김아영 종교부 차장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