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리더의 덕목

입력 2025-09-27 00:35

비판적 사고 수업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던 학생 한 명이 가방을 메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오늘 가족회의야!” 나는 의아해서 “가족회의가 그렇게 한숨을 쉴 일이에요?”라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우리 아버지는 교수님과 다르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뭐가 다른데요?” “우리 아버지는요, 제가 무슨 말만 하면요, 그건 네가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러는 거래요.”

그러면서 자기 말이 어디가 어떻게 말이 안 되는지를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러지는 않고 네가 뭘 모르는 거라며 말을 막는 통에 결국은 말을 하기 싫어진다고 했다. 그제야 학생의 한숨이 이해가 됐다. 그렇게 되면 그 가족회의 시간은 아버지 생각을 회의의 형식을 통해 쏟아놓는 시간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근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맞춰 근거를 선택하는, 비판적 사고가 안 되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망하는 회사의 특징’이라는 신문기사에서도 유사한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바로 ‘회의시간은 긴데 결론은 항상 리더 마음대로 난다’는 특징이었다. 원래 회의는 여러 구성원의 의견을 들으며 무엇이 타당하고 타당하지 않은지 논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타당하다고 확인된 사실들을 종합해 ‘현실을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바로 회의의 목적이다. 그런데 리더가 결론에 대한 자신만의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리더는 자신의 마음에 맞는 결론을 지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직원을 똑똑하다고 칭찬하고, 자신이 마음에 둔 결론을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직원에게는 “아직 뭘 모르는구먼”이라며 면박을 주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팀원들은 리더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이런 조직의 경우 위기관리가 어려워진다. 리더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볼 수 있는 팀원이 남아 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리더와 경향성이 다른 팀원들이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으니 자신을 인정해주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이 조직에는 리더랑 비슷한 경향의 팀원들이나 리더에게 아부하는 팀원들만 남게 된다. 똑똑한 팀원이 없다고 느낀다면 리더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혹시 자신이 팀원들로 하여금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리더가 자신의 말에 팀원들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다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팀원들은 리더의 생각보다 리더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회의에서 리더가 자신의 영향을 줄이고 다양한 얘기를 듣고 싶으면 모든 팀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장을 반박해볼 것을 요청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리더의 주장의 약점을 살펴볼 수 있게 되어서 좋다. 그리고 리더의 주장으로 결정이 될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확인해보는 보너스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권력의 맛은 달콤하다. 내 유머에 빵빵 터지는 팀원이 이쁘기 마련이다. 리더에게는 그 단맛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