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릴 줄 아는 목회로 ‘마음의 신학’ 깊이 더했다

입력 2025-09-25 03:05
송용원 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교수가 신학하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신학과 삶, 사유와 고백이 만나는 글입니다. 한 사람의 한 순간, 한 문장, 한 기도, 한 고백을 통해 그 안의 하나님을 알고 배우고 따르고 싶은 마음을 다룹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1900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어시장과 공공 계량소 건물 주변 풍경.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가 1902년부터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활동했던 도시의 당시 모습으로, 카메라로 포착한 흑백의 현실에 색을 더하는 포토크롬 기법이 그림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토글로브 취리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은 요동치는 바다와 같았습니다. 산업화의 물결은 숨 가쁘게 밀려왔고, 철학의 질문들은 신앙의 뿌리를 흔들었으며, 과학의 발견은 오래된 확신들 위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교회 안에도 균열이 깊어졌습니다. 믿음이란 과연 삶 속에서 어떻게 실제가 될 수 있는지, 모두가 묻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 격랑 속에서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사진)는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정통 개혁신학의 뿌리를 붙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흔들림 많은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찾으려 했던 신학자였습니다.


그런 바빙크의 신학은 오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북미에서는 이른바 ‘바빙크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학문적 관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21세기 미국의 CS 루이스라 불린 팀 켈러(1950~2023) 목사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목회할 때, 그 바닥을 받쳐준 신학적 지층에 바빙크가 있었다고 고백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이성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그의 작업은 오늘의 세대에도 여전히 길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게 마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혼 전체를 조율하는 관제탑이자 진리를 품고 흘려보내는 샘이었습니다. 생각과 욕망, 의지와 사랑이 모여 흐르는 자리, 바로 그 마음에서 그의 신학은 시작됐습니다. 머리로만 계산한 지식은 차갑게 굳지만, 마음에서 길어 올린 지혜는 사람을 덥히고 살립니다.

바빙크는 프라네커르 교회에서의 목회 초년병 시절, 교실에선 배울 수 없는 목회자의 마음이 성숙하게 빚어지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마음을 품은 신학자이자 눈물이 있는 설교자가 돼갔습니다. 성도들에게 그는 “가까이하기 쉬운 목회자”였습니다. 언제나 “평균 또는 평균 이하의 삶을 사는 성도들을 향한 마음”이 가득했다고 합니다(‘바빙크 평전’). 그렇게 병든 자의 신음, 의심하는 자의 눈빛, 낙심한 자의 한숨과 함께하면서,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신학의 깊이가 생겨났지요. 훗날 집필한 대작 ‘개혁교의학’은 고독한 상아탑의 산물이 아니라, 교회의 현실과 시대의 질문 속에 길어 올린 고백입니다. 그러나 무거운 소명을 짊어진 그의 책상에는 목회자의 실존적 고민 또한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목회 사역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항상 나 자신을 고양시켜야 하고 내 믿음과 고백의 이상적인 높이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이야. 목사라는 예복 아래 얼마나 거룩하지 않고,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위선적인 마음이 거하고 있는지, 난 예전보다 현재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어.”(‘라이덴의 우정’)

이러한 바빙크에게 사람은 단지 생각하는 기계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지성만 아니라 마음, 감정, 의지를 지닌다. 지성은 현상에 이르지만, 마음은 참된 실제와 접촉한다.”(‘교회교의학’) 여기서 영과 혼,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중심, 그것이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신학은 언제나 흩어진 지식을 꿰매어 하나의 진리로 호흡하는 유기체와 같았습니다.

바빙크의 언약 이해에서도 마음의 신학이 배어납니다.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대립시키지 않았지요. 그에게 행위 언약은 ‘이 길로 걸으면 생명에 이른다’는 사랑의 첫 손길이었고, 은혜 언약은 길을 잃은 자를 직접 안고 집으로 데려오시는 더 깊은 사랑의 손길이었습니다.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방식만 다를 뿐, 그 안에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고 있었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확신이 그의 신학 전체를 지탱했습니다.

계시에 대한 그의 통찰도 그러했습니다. 객관적 계시는 외적 기초이고, 성령의 내적 조명은 마음 안의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앙을 일으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래서 바빙크에게 신학은 ‘머리 가슴 손’이 함께 움직이는 불꽃이었지요. 그는 논쟁의 자리에서도 상대 안에서 긍정적이고 진실하며 성경적인 면을 먼저 보려 했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은 날 선 논쟁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품으려는 빛이 됐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돌아보면 정보는 넘치지만, 마음을 다하는 기도는 메말라가고 있진 않은지요. 아무리 인공지능(AI)이 대단하다 해도 가슴 떨려본 적 없는 알고리즘, 눈물 떨군 적 없는 데이터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다들 마음의 온도가 예전 같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옹졸한 논쟁보다 너그러운 태도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먼저 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살아내야 하는 걸까.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바빙크는 속삭이는 듯합니다. 마음으로 시작해보라고.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했던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사랑의 끈기(고전 13:7) 그 우직한 순종이야말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주님의 마음이자 바빙크가 마지막까지 지켜냈던 마음일 것입니다.

송용원 장로회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