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꽃’ 수원 화성… 정조의 꿈·효심 좇아 과거로 시간 여행

입력 2025-09-25 02:10
경기도 수원 화성 방화수류정 일대가 야간 조명에 물들어 근사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가을은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높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경기도 수원은 서울, 수도권 주민들에게 안성맞춤 여행지다. 대중교통이 다양하고 이동 거리도 짧다.

9월 수원에서 핫한 곳은 수원 화성(華城)이다.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다. 여기에 수원화성문화제가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이어진다.

수원 화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돼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린다. 지금의 모습은 1975년 이후 복원된 것이다. 수원 화성을 지을 당시 남긴 완벽한 공사 기록서인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되살아났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꿈이 깃든 도시다. 그의 지극한 효심으로 탄생했다.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은 처음 일반인과 같은 ‘묘’였다. 정조가 즉위한 뒤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해 묘에서 ‘원’으로, 이어 ‘능’으로 승격했다. 현재 서울 청량리 인근인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천장했다. 조선 땅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진 융릉(사도세자의 능) 자리에는 수원부가 있어 많은 백성이 살았다. 정조는 수원부와 마을을 통째로 옮길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이사할 비용까지 챙겨줬다고 한다. 이전한 곳에 성벽을 쌓은 것이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실학자 정약용이 설계하고, 채제공이 축성 책임을 맡았다. 1794년에 착공해 1796년에 완공했다. 땅속 깊이 1m로 기초를 다지고 둘레 약 5.7㎞, 높이 4~6m 성벽을 세웠다.

수원 화성에는 주 건축물들이 40여 개나 된다. 동서남북에 놓인 창룡문·화서문·팔달문·장안문, 군사를 지휘하는 서장대와 동장대, 5개 포루, 봉돈, 치(치성), 공심돈, 수문, 각루, 노대, 적대, 암문 등 성벽과 모든 건물까지 2년 9개월(장마 등 공사를 못 한 기간을 제외하면 약 2년 6개월)에 완공했다.

화성 여행은 화성행궁에서 시작한다. 행궁을 둘러본 뒤 동장대(연무대)로 이동한다. 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해 잠시 머물거나 나들이할 때 묵는 임시 궁궐이다. 화성행궁은 화성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정조를 위해 지은 궁궐이다. 원형은 576칸으로 정궁 형태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으로 철거됐다.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축물 중 하나가 낙남헌(洛南軒)이다.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

행궁의 정문은 신풍루다. 진남루였던 이름을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맞아 바꿔 불렀다. ‘신풍’은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풍은 황제의 고향’이란 뜻이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옮긴 뒤 재위 25년간 13차례 화성을 찾았다. 주로 수행 비서 몇 명을 대동하고 조용히 다녀갔는데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큰 행차를 했다. 화려한 행렬과 함께 이틀에 걸쳐 화성으로 이동한 뒤 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진찬연을 열었다. 다음 날은 고을 사람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고 과거를 치르는 등 화성에서 나흘 동안 머물고, 다시 이틀에 걸쳐 한양으로 돌아가느라 8일이 걸렸다.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4대문 중 북문에 해당한다. 옛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온 것으로, 당나라 때 장안성처럼 화성도 융성한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 붙였다. 일반적으로 남문을 정문으로 삼지만 정조가 한양에서 올 때 북문에 먼저 닿아 정문이 됐다. 장안문에서 서쪽으로 가면 화서문을 지나 팔달산 정상 서장대에 이르고, 동쪽으로 가면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지나 동문인 창룡문에 닿는다.

수원천 위 무지개 수문이 설치된 화홍문.

동북각루라고도 불리는 방화수류정은 높이 20~30m의 용두바위 위에 세운 누각이다. 방화수류(訪花隨柳).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방화수류정 바로 앞에는 어울리게 아름답게 꾸며진 인공 연못이 있다. 용연이다. 승천하던 용이 떨어져 죽은 곳이 용연이고 이때 잘린 머리가 용두바위가 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연못 가운데에는 동그란 작은 섬이 들어서 있다. 남쪽 언덕 위에 자리한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보름달이 수면 위를 비추는 풍경을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하며 수원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해가 지면 조명이 켜져 근사한 밤 풍경을 펼쳐놓는다.

방화수류정 앞 수원천의 물은 화홍문 아래를 흐른다. 화홍문에서 화(華)는 화성을 뜻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의미한다. 무지개는 화홍문의 일곱 가지 수문의 모양이다. 누각은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로 쓰였다.

축성을 수월하게 도와주는 각종 기계를 발명한 점도 인상적이다.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을 발명해서 활용했다. 실학사상에 근거해 겉모양보다 실용적인 면에 치중한 부분도 눈에 띈다. 공격용 대포를 넣는 포루의 지붕이 말을 타거나 긴 창을 들고 갈 때 부딪힐 위험이 커 성벽 안쪽의 지붕을 직선으로 마감한 것이 그 예다. 화성행궁과 창룡문 중간쯤 자리한 수원화성박물관은 화성의 우수성을 알리고, 축성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수원=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