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 잡기’ 신공항 사업 곳곳 불거지는 환경·법적 리스크

입력 2025-09-24 02:04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소속 시민들이 23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만금 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에 정부가 승복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표심을 겨냥해 환경 영향과 사업성에 대한 정밀한 검증 없이 너도나도 추진한 신공항 건설 사업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전북 새만금신공항과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이 환경 및 경제성 문제로 후속 법정공방이 불가피해진 데 이어 제주 제2공항도 환경문제에 발목 잡힐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감사원이 23일 ‘여객 수요 부풀리기’ 등으로 문제 삼은 흑산·울릉공항은 지방 신공항 사업의 폐단을 드러낸 단적인 사례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경제적 타당성 검증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인 결과”라며 “2019년 100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지방 신공항 사업도 잇따라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북 새만금신공항 사업이 대표적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달 초 새만금신공항 사업에 대한 조류 충돌 위험성을 비교 검토하지 않은 점, 위험도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점 등을 이유로 기본계획 취소 1심 판결을 내렸다. 이곳의 조류 충돌 총위험도는 2015년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무안공항보다 최대 61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곧바로 항소를 제기해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국토부는 새만금신공항을 국가 균형발전과 새만금 개발 사업의 핵심 인프라로 보고, 지역 투자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심에서 지적된 조류 충돌 위험성과 환경 훼손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를 당장 취하하라”며 반발했다.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도 법적 논란에 휘말려 있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은 지난 5월 안전성 확보, 공사난도 등을 이유로 공기 연장을 요구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자 계약을 파기했다. 해당 사업은 2029년 개항을 목표로 관련 특별법 통과에 따라 추진됐다.

국토부는 현재 현대건설의 가덕도신공항 수의계약 파기 건에 대해 국가계약법 위반 여부 이외 법적 제재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국가계약법상 현대건설을 부정당업자로 제재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은 데 따른 조치다.

전남 흑산공항은 여객 수요 ‘뻥튀기’ 외에 환경 리스크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흑산공항의 조류 충돌 확률은 최대 0.1%로, 무안공항(0.09%)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1만7000회 운항 시 최대 17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평가에서 “공항 운영과정에서 항공기와 조류 간 충돌 위험이 있는 지역으로 조류충돌 방지 방안을 수립해 제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제주 제2공항도 건설 예정지 반경 13㎞ 안에 제주 최대 철새도래지(하도)를 포함해 4곳의 철새도래지가 있다. 시민단체는 조류 충돌 위험성이 무안공항의 568배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지방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정치 논리보다 과학적·경제적 검증이 앞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경제성 분석에서 가장 외면돼 온 것이 생물다양성과 조류 충돌 같은 인명 위험”이라며 “갯벌 상실, 생태계 파괴 비용 역시 화폐가치로 산정할 수 있는 만큼 향후 예타 분석에 반드시 비용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