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20조 2항에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른바 정교분리 원칙이다. 이 원칙이 헌법에 규정된 것은 정치권력과 특정 종교가 결탁돼 종교가 정치를 향해서든, 정치가 종교를 위해서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상황을 보면 유사종교 세력과 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이 도를 넘어선 것은 물론, 범죄적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통일교의 한학자 총재가 구속된 게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어제 윤석열 정권과 통일교 간 유착 의혹을 받아온 한 총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김건희특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증거인멸 교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한 총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총재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 인사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특검은 또 통일교 구성원들이 국민의힘에 집단으로 당원 가입을 한 의혹도 수사 중에 있다. 통일교만 그런 의혹을 받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어제 당 회의에서 “국민의힘과 신천지 간 유착 의혹도 점증하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죄를 통해 다시는 헌법이 유린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일 말고도 그간 우리 사회에선 법사, 도사, 보살이라는 이들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말썽을 일으킨 일들도 많았다.
유사종교 세력이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나 정치권이 당내외 선거에 그런 세력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 모두 정상적 민주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교 유착을 금지한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자 민의를 왜곡하는 반민주적 행위다. 그런 일은 종교 행위도 아니고, 정치라고도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반종교요, 반정치일 뿐이다.
다행히 제도권 내 기성 종교계는 대부분 정치권력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일부 극단에 치우친 세력의 일탈도 없지 않아 이번 일들을 정교분리 원칙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종교 집회가 정치적 주장을 대변하는 장으로 변질되거나, 특정 정치 세력과 연계됐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교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인들의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그렇게 종교가 부당한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때 빛과 소금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고, 종교인들도 더 큰 존경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