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희망의 한끼 나누는 공동체… 온정을 선물받다

입력 2025-09-24 03:01
벙거지 모자를 쓴 어르신이 22일 경기도 하남 벧엘나눔공동체에서 추석 선물 키트를 받고 있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22일,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쓴 백승덕(65)씨가 경기도 하남 벧엘나눔공동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보조 카트에 의지한 채 한쪽 다리를 절었고, 중풍의 영향으로 오므라든 손을 내밀어 명절 선물 키트를 받았다. 그는 이곳에 오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4시간을 꼬박 걸어왔다고 했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된 지 벌써 5년이다.

백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온다. 여기 왔다 갔다 하는 게 8시간인데, 그냥 하루 종일 운동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곳은 식사 공간이자 재활의 장소다. 백씨는 받은 만큼 나누는 삶을 실천한다. 그는 “항상 폐지와 빈 병을 팔아 모은 돈을 내고 먹으려고 한다”며 “신앙을 배운 덕분에 주는 마음이 더 좋다. 받기만 하는 것보다…”라고 말했다.

벧엘나눔공동체(이사장 강정자 목사)는 하남에서 정부 지원 없이 운영되는 민간 무료급식 봉사 단체다. 정부 지원은 법적 테두리 안의 수급자에게 한정되다 보니 그 경계에 있는 ‘틈새 계층’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동주 사무국장은 3년 전 급식소를 이전하고 3개월 만에 이전 장소 인근의 한 어르신이 고독사했다고 전했다. 그는 “급식소가 있을 땐 다 함께 줄도 서고 질서도 지키면서 할 일이 있었는데, 이전 후에는 찾아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2004년 한 식당에서 시작된 벧엘나눔공동체는 21년간 네 번의 이사를 거치며 명맥을 이어왔다. 설립자인 이사장 강정자 벧엘교회 목사는 월 120만원의 빠듯한 정기후원금으로 버티지만 치솟는 물가에 “김치 담글 때면 시장 가기가 겁난다”고 눈물을 머금었다. 하지만 그는 ‘없는 만큼 나눈다’는 믿음으로 사역을 이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도 문을 닫지 않고 매일 도시락을 싸서 나눠주는 등 헌신을 이어온 것도 그 마음 때문이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여전히 “이곳이 문 닫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날 공동체 앞마당은 구세군 한국군국(사령관 김병윤)이 후원한 나눔 키트를 받으려는 어르신들과 송편 햇반 등이 담긴 상자를 분주히 포장하는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총 200개의 나눔 상자가 어르신들에게 전달됐다. 한세종 구세군 서기장관은 지원 이유에 대해 “성경의 정신을 따라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는 교단의 경계가 있을 수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어렵게 운영되는 벧엘나눔공동체와 같은 복지 사각지대에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후 관계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박영희(가명)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것도 잠시, 박 할머니는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암이 전이된 며느리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손자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는 그는 자녀들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시름을 견딘다고 했다. 박씨는 “너무 감사하지요”라며 “누가 우리 생각을 하겠어요.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각해줘서 그렇지”라고 말했다.

대경월드휴먼브리지 봉사자들이 ‘사랑의 보따리’를 포장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대경월드휴먼브리지제공

추석을 맞아 소외된 이웃을 향한 교계의 온정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지구촌교회(김우준 목사)는 쌀 라면 식용유 등 10여 가지 생필품을 담은 선물 상자 1500개를 제작해 사회복지기관 30곳과 미자립교회 29곳에 전달한다. 교인들이 직접 신청한 독거노인이나 한부모 가정 등에는 안부 인사를 건네며 찾아간다. 경북 경산중앙교회(김종원 목사)가 설립한 NGO 대경월드휴먼브리지는 조손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 420개의 ‘사랑의 보따리’를 보냈다. 생필품 외에도 직접 짠 수세미, 안마기 등 가정마다 특색 있는 구성품을 담아 마음을 나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곳도 있다. 경기도 성남 선한목자교회(김다위 목사)는 다음 달 3일 노숙인과 독거 어르신 700여명을 초청해 명절 음식을 나누는 ‘추석맞이 어려운 이웃 초청잔치’를 연다. 15년 전 교인 몇몇이 명절에 홀로 지낼 이들을 위해 자비로 음식을 대접한 것에서 시작돼 이제는 교회의 공식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남=글·사진 김용현 기자, 박윤서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