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최적화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가 많은 작가의 경우 팬덤이 형성되며 전시를 하면 팬들이 몰려와 억대 작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됐다고 지난 7회 연재에서 전했다. 인스타에서 작품을 보여주고, 팬덤이 사 주니, 화랑의 입지가 흔들리는 게 아닌가. 그런 변화에 대해 서울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A씨에게 이야기했더니 대뜸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인스타 작가’요? 이름만 다르지 비슷한 건 예전에도 있었어요. 1990년대 ‘문센(문화센터) 작가’가 그랬거든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수강생을 대상으로 드로잉, 수채화를 가르치던 화가들이 개인전을 하면 수강하던 제자들이 대거 몰려와 작품을 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며 월급쟁이도 미술 수요자로 뛰어든 1970년대 이래 미술계에서 대중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그림이 시장의 유행을 이끌기도 한다. A씨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는 작가는 대중의 취향과는 무관하다"며 ”미래의 미술은 늘 대중보다 두 발 앞서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화랑은 자신의 안목으로 그런 작가를 ‘선점’해 전속 작가로 두고 함께 커간다”고 강조했다. BTS를 키운 방시혁의 하이브 같은 기획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기획사 같은 화랑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요 갤러리 대표들을 대면과 전화,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인스타가 해주지 못하는 것
프리즈서울에 지난해부터 입성한 ‘강소 화랑’ 갤러리조선 권미성 대표는 지난달 갤러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런 작가를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다. 어떻게든 좋은 작가를 찾아 함께 가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단타 매매하듯 대중에게 잘 팔리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보다 미술사에서 중요해질 작가를 선별해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화랑은 20년, 30년 멀리 내다보고 하는 장기 투자 사업이다. 호흡이 길고, 그 긴 호흡을 견딜 수 있는 맷집과 밑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뿐 아니라 자카르타, 로스앤젤레스에도 기반을 둔 백아트의 수잔백 대표는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화랑이 작품을 전시하고 컬렉터에게 판매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우리는 그 이상의 일을 한다. 기획은 대관처럼 단순히 전시장에 작품만 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화랑 공간에서 어떤 소재를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즉 지금 왜 이런 전시를 하는 것인지를 작가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러한 이유로 화랑을 일종의 매니지먼트 회사, 갤러리스트를 매니저에 비유했다.
#전속 작가 제도…일종의 기획사
화랑에 소속된 작가가 개인전을 해서 작품을 판매하면 화랑과 작가가 5 : 5로 나누는 게 관례다. 유명세가 있는 작가의 경우 작가 몫이 더 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이렇다. 도대체 화랑이 무슨 일을 한다고 작품이 팔리면 판매액의 절반을 가져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전속 화랑이 물밑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다. 백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1세대 실험미술대가 성능경(81) 작가의 개인전 ‘쌩~ 휙!’을 기획의 예로 들었다. 성능경은 신문읽기, 영어공부하기 등 일상 행위에 기반해 실험적인 개념미술 작업을 해왔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일까. 그는 2년 전 백아트 전속 작가가 되면서 작가 인생 50년만에 처음으로 상업 갤러리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과거의 작업을 변주했다. 이를테면 1974년 작 ‘세계 전도’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 ‘USA 전도’(2025)로 이어졌다. 2023∼24년 미국 전시 활동 중 수집한 지도에서 각 주(state)를 오려내어 해체한 뒤 그 조각을 또 다른 판형에 재배치했다. 작가는 또 이번 전시에 즈음해 이 시대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싸리나무를 세운 설치미술을 전시하고, 정치권에 싸리나무 회초리를 드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백 대표는 “인스타를 통해서 이제는 아프리카 작가가 미국 컬렉터에게 작품을 파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그런데 작가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원팀이 돼 같이 가주는 갤러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월급부터 작품 설치, 운송 지원까지
전속 작가가 되면 2, 3년 주기로 그 작가의 개인전을 열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갤러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월급을 주는 갤러리도 일부 있다. 갤러리조선, P21, 윌링앤딜링 등의 경우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강소 갤러리 육성을 위해 시행하는 전속작가 지원제도에 선정돼 3명씩 3년간 120만원의 월급을 지원해준다.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로 뿌리내리기 전 초기 단계에서 안정적으로 작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제도라고 권 대표는 평가했다.
하지만 메이저 갤러리도 요즘은 전속 작가에게 월급제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정기적으로 개인전을 개최해주고 여기에 수반되는 기획, 작품 운송, 보험, 설치, 인쇄물 및 도록 제작, 홍보, 개막식, 기자간담회 등을 책임진다. 전속 기간은 1년∼3년 등 작가마다, 화랑마다 다르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와 별개로 제주에 마련한 레지던시(작업실)에서 전속 작가들이 머물며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또 전속이 되면 자신의 갤러리가 아닌 다른 미술관 혹은 갤러리 등 외부에서 기획전이나 개인전을 할 경우 매니저처럼 도와준다. 계약서 검토는 물론 작품 설치까지 해준다.
# 더 넓게 해외로, 더 멀리 미래로
메이저 갤러리일수록 전속 작가 지원 업무에 방점을 찍는 것은 작가의 지명도와 수요 기반을 해외로 확장하는 일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해외 주요 미술관에 전속 작가의 작품이 소장 되도록 애쓴다.
성능경 작가는 2023년 백아트 첫 개인전 이후 미국 해머미술관(로스앤젤레스)과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시카고)에 작품이 소장됐다. 백 대표는 “해외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이런 한국 작가가 있으니 관심 있게 봐달라고 소개하며 자료를 보낸다”고 말했다.
작품이 외국 미술관에 소장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아시아 작가들은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면 영어로 그 작가에 대한 기록이 남게 된다. 이는 구미의 미술사가나 미술비평가들이 그 작가에 대해 연구할 자료가 갖춰진다는 의미이며 이는 주류 미술사에 남을 확률을 높인다. 다시 말하면 ‘위대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리안 등 메이저 갤러리들이 해외 아트페어에 열심히 다니는 건 그래서다. 갤러리현대 도형태 부회장은 “우리는 전 세계 아트페어를 연간 6개에서 많으면 10개씩 참가한다.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우수함을 알리고, 그것이 해외 주요 미술관의 작품 소장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프리즈 런던에 소개된 이승택 작가의 작품이 테이트모던에, 뉴욕 아모리쇼에 소개된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의 작품이 현대미술관(모마)에 소장되는 성과를 거뒀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