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애틀에서 뉴욕까지 5646㎞. 감리교신학대 신학대학원(MDiv)에 재학 중인 강동완(26)씨는 지난 6월 4일부터 8월 9일까지 67일간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했다. 몇 개의 단순한 숫자로 요약된 강씨의 횡단 기록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더 깊고 놀랍다.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고난의 길로 내보낸 한 청년의 용기와 그 길 위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진 횡단기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순례의 여정에서 하나님과 일대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는 강씨를 만나 자전거를 타고 경험한 광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코로나 블루에서 시작된 작은 기적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상이 닫혔던 2021년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청년은 자꾸만 우울감에 빠졌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를 밖으로 꺼내준 건 자전거였다. 어린 시절부터 등하교를 자전거로 했던 강씨였다. ‘팬데믹이 아무도 못 만나게 한다면 혼자서 타는 자전거로 낯선 곳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첫 도전을 시작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충북 충주까지 180㎞를 달렸다. 100㎞가 넘는 거리를 처음 주파한 경험이 준 성취감은 컸다.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이 강씨를 사로잡았다.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솔직히 너무 무섭고 외롭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가운데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어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강씨는 처음 시도했던 장거리 자전거 투어의 경험을 이렇게 떠올렸다. 자전거의 매력에 빠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그해 한국의 자전거길을 다 달렸다. 국토 종주, 4대강 종주, 동해안 종주, 제주도 종주까지.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2022년 3월 입대한 그는 군 복무 중에도 바로 다음 꿈을 키웠다. 2023년 10월 말년휴가로 부대에서 국외여행 승인을 받고 일본 횡단에 도전했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규슈 후쿠오카까지 2340㎞. 일본어는 전혀 못 했지만 파파고와 구글 번역으로 충분했다.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의 한 시골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자고 가라며 환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일본에서 맛본 성취감은 더 큰 꿈을 키웠다. 이번엔 미국이었다. 그는 올해 상반기 학교를 휴학하고 롯데호텔과 돈가스집에서 주 6일씩 일했다. “그렇게 땀 흘리며 60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 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죠.”
지도 제작부터 코스 설계까지 모든 걸 독학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6월 4일 시애틀에서 그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으로 만든 기도 네트워크
그는 미국 횡단을 앞두고 특별한 아이템을 준비했다. 바로 페이스북 계정이었다. 목회자들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목사님들이 페이스북을 활발하게 하시더라고요. 인물 소개에 ‘감리교신학대학교’라고만 썼는데 전국의 목회자들이 친구 신청을 받아주고 먼저 대화를 걸어주는 분도 계셨어요.”
페이스북을 통해 연결된 다양한 교파의 목회자와 성도 1690여명이 든든한 기도 후원자가 됐다. 매일 밤 올리는 여행 일기에는 댓글로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여정 중 가장 힘든 고비는 워싱턴주 사막 구간이었다. 6월의 이상 기온으로 41도까지 치솟았고 탈수 증상이 심하게 왔다. 그는 주변 민가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다급한 그의 상태를 본 현지인 여성은 스프링클러로 샤워까지 시켜주고 시원한 물도 갖다 줬다.
위스콘신주 랭커스터의 연합감리교회에서는 한 성도가 다가와 자기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한 편의점에서 만난 백인은 “밖에 있는 자전거가 당신 것이냐”고 물으며 음식과 초콜릿을 사주기도 했다.
“미국에 가기 전엔 동양인 차별에 대해 걱정했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온 청년이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걸 알면 감탄하며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죠.”
한인 사회의 따뜻한 포옹
횡단 후반부로 갈수록 한인 사회의 도움이 줄을 이었다. 조선형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목사는 휴가 중임에도 직접 마중 나와 강씨를 반겼다. 호텔을 제공하고 시카고 피자까지 사줬다. 같은 기독교교육학과 선배라는 인연도 있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만난 최영락 형제, 뉴욕주 클래런스센터 연합감리교회 문요한 목사, 뉴욕의 후러싱제일교회 김정호 목사까지 강씨에게 잠잘 곳을 내어주는 따뜻한 손길이 계속됐다. 일면식도 없는 신학생의 도전을 흔쾌히 도와준 분들이 있어 가능한 횡단이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그는 여정을 마치며 감사의 마음으로 후러싱제일교회에 자신의 자전거를 헌물로 드렸다.
하루 6~7시간씩 페달을 밟는 긴 시간, 강씨에겐 가장 특별한 동반자가 있었다. 바로 설교 말씀이다. “편안한 자리에서 듣는 설교와 고난 속에서 듣는 설교는 완전히 달라요. 광야같은 길에서 귀로 듣는 말씀은 정말 입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숙소는 주로 캠핑장이었다. 미국 시골 모텔은 한화로 8만원이 넘지만 캠핑장은 2만원부터 시작한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이해하는 현대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텐트 치고 혼자 밥을 해 먹으며 지냈어요. 올해 신년에 받은 말씀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가 두려움보다 담대함을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네요.”
제임스 파울러가 말한 그 신앙
그는 이번 여정에서 경험한 것을 미국 종교심리학자인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발달 이론으로 설명했다.
파울러가 제시한 ‘개별적-성찰적 신앙’을 찾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내 신앙은 무엇일까. 목사님이 설교하는 그 신앙이 아니라 제가 경험하는 신앙,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저만의 경험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는 자전거를 타면서 그 답을 찾았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는 고독 속에서 나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앙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씨는 현재 감신대 신대원에서 목회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전도사 사역을 하며 설교 시간에 자전거 투어 이야기를 했더니 성도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자전거로 그 나라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문화와 생활을 직접 체험했던 경험은 나중에 성도들과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도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길 위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성도분들이 깊게 공감해 주시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땅을 직접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전거를 타고 더 깊은 곳까지요.”
로키산맥부터 옐로스톤 국립공원, 러시모어산까지. 긴 오르막에서는 포기하고 싶었고 그늘 없는 사막에서는 차를 타고 가는 이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강씨는 이미 다음 여정을 꿈꾸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 청년들을 향해 응원이 담긴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혹시 신앙생활이 좀 힘들거나 자기 신앙을 찾지 못한 청년들이 있다면 저처럼 자전거를 타고 떠나세요. 저는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서 아예 자연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런 고난의 시간이 신앙을 찾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순례 여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1대1 만남을 가질 수 있길 응원합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