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수탉과 평화의 상징

입력 2025-09-24 00:33

정확한 사실 모르고 적당히하는 말 많아…
방송 유튜브 AI 검색 모두 철저히 확인해야

의심이 많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웬만해선 유튜브는 물론 인공지능(AI)의 검색 결과와 방송까지 잘 믿지 않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찾아보는 것이다. 어차피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평소엔 안 그럴지 몰라도, 지금은) 한가할 테니,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은 수탉이다. 위엄 넘치는 사자나 독수리가 아니라 수탉이라니. 왜 이럴까. 로마제국 시절 현재 프랑스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갈리아인이었다. 공교롭게 이들을 부르는 라틴어와 수탉을 뜻하는 라틴어 갈루스(Gallus)는 발음이 비슷했다. 이리하여 일단 이들에게 수탉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이후 앙리 4세가 100년 전쟁으로 지쳐 있던 국민에게 매주 닭을 한 마리씩 먹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자 닭에는 애민정신의 이미지까지 덧대졌다. 여기에 싸움닭의 용맹함이 로마 시절에 맞서 싸운 전사처럼 인식되며, 결국은 수탉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동물이 됐다.

세월은 흘러 흘러 1948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인물이 태어나니, 그의 이름은 바로 토마스 제프스키. 그는 프랑스 남서부 베르주라크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에는 독특한 응원 문화가 있었다. 스포츠 시합이 있는 날 경기장에 행운의 상징인 수탉을 들고 간다는 것. 하여, 소년 제프스키는 고향의 럭비장을 위시해 42년간 수탉을 들고 이런저런 경기장을 다녔는데, 뉴욕타임스 계열사인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그가 지난해까지 수탉과 함께 다녀온 A매치만 305게임에 달한다.

명민한 독자는 눈치챘겠지만 프랑스 시골 출신인 그의 이야기가 어째서 북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언론사에서까지 보도됐느냐면 그가 유명세를 탄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1998년.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 0으로 꺾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순간 카메라 감독이 택한 피사체는 바로 닭으로 태어난 주제에 나보다 훨씬 더 유명세를 떨칠 운명의 주인공인 수탉, 즉 제프스키가 안고 있던 이름까지 귀족 같은 ‘발타사르(Balthazar)’였다. 프랑스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우승을 한 그 순간에 땀 흘린 선수들이 아닌, 수탉이 대형 화면에 11초나 잡힌 것이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퍼졌고, 발타사르는 프랑스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로 등극해 내 질시를 한 몸에 받게 되고 만 것이니, 이건 뭐… 내 사정이고, 쩝.

이후 제프스키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가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동행했다. 아울러 시합 시작 전 그가 발타사르를 허공에 한 번 날리는 것은 빠질 수 없는 행사가 됐다. 녀석이 잘 날아가면 그날 시합은 승리, 잘못 날아가면 패배. 이런 식의 공식까지 성립됐다. 이런 연유로 유명인사가 된 제프스키는 프랑스 축구계 전설들을 만나고, 대표팀이 묵는 호텔에서 함께 묵고, 심지어 그가 1998년 월드컵 우승자들에게 사인을 받은 나무 월드컵은 취리히 국제축구연맹(FIFA) 박물관에 전시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당연히 이러한 인물이 한국에도 왔으니, 박지성 선수가 생애 최고의 시합으로 꼽은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을 불과 닷새 앞둔 ‘프랑스 대 한국의 평가전’이다. 그리고 이날에도 제프스키는 예의 그 신성한 행사를 치렀으니, 이 광경을 멀찍이 지켜본 우리 중계진은 힘주어 말했다. “아! 프랑스 서포터들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네요!” 아쉽지만, 당연히 그건 수탉이었다.

이래서 내가 방송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라디오에 매주 출연하며 이런저런 말을 틀리게 하고 나오니, 미안할 따름이다(늘 방송을 마치고, 잘 때쯤 이 사실을 깨닫는다. 변명하자면, 악의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이때껏 제가 써온 글 믿으시나요. 그리고 이 글의 내용은 모두 사실일까요? 호호호.

최민석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