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계절의 이웃들

입력 2025-09-24 00:35

아침이면 홀린 듯 숲을 향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흘렀지만 지겹기는커녕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숲은 날마다 다른 표정을 지었고 계절 따라 새 이웃을 소개했다. 월든 호숫가의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흠모했으나 문명과 사회 속에서 세상의 망을 짠 내게는 숨이 트이는 시간이었다.

벚꽃 진 5월엔 다람쥐와 자주 마주쳤다. 그들은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버찌를 먹는 데만 열중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는 앙증맞은 모습에 땅에 흩어진 버찌 껍질만 봐도 내가 차려준 밥상을 싹 비운 양 흐뭇했다. 외투가 조금 덥게 느껴질 무렵, 여름의 신호탄처럼 딱따구리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름 모를 곤충도 쉽게 눈에 들어왔는데, 등산객의 발에 밟혀 으스러진 딱정벌레를 본 뒤로는 그들을 안전지대로 옮기는 구조대 노릇을 자처했다. 나비가 곁에 맴돌면 “혹시 그때 그 애벌레니?”라고 묻는다. 예쁘게 잘 컸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웃은 날씨와 눈치싸움을 벌였던 장마철에 만났다. 자욱한 운무 사이로 은빛 햇살이 쏟아지는 몽환적인 풍경에 넋을 놓던 때였다. 먼발치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갓 돋아난 깃털이 축축이 젖어서인지 더 가여워 보였다. 녀석을 나무 둥치 옆에 내려놓고 말했다. “빽빽 울어. 그래야 엄마가 찾아.” 무사히 어미 품으로 돌아갔는지, 이제는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참 궁금한데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열매만 달릴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는 매미 허물도 대롱대롱 달린다. 세상을 삼킬 듯 울어대던 소리에 한여름 숲은 장터처럼 소란스러웠는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매미 소리가 뚝 그쳤다. 텅 빈 집처럼 고요한 숲을 걸으며 알았다. 숲의 이웃들이 함께였기에 나의 계절이 다채롭고 풍성했음을. 서늘한 아침 바람에 곧 만날 가을의 이웃을 그려본다.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서둘러 외투를 꺼내 입었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