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요?” “앞으로 어떤 경력을 쌓아가야 할까요?” 요즘 커리어나 진로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었다.
법대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고등학교 친구들은 “풋” 하고 웃었다. 냉철해 보이는 법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전에도 고민이 많았다. 심리대학원에서 진로검사를 했는데, MBTI 성격유형이 법조인 유형과 상극인 ENFP(외향적, 이상적, 감성적, 즉흥적)로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감성적이고 예술적, 인도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더 훌륭한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긴 수험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에는 소규모 로펌에서 주로 보험, 손해배상 사건을 담당했다. 소위 ‘박리다매’형 사건이었다. 또래 변호사에 비해 초봉은 적은 반면 수행해야 할 사건은 많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치열하게 훈련받을 수 있었다. 의료, 교통사고, 산재 같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를 접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또 손해액을 얼마로 하고, 적정 위자료는 얼마인지 하는 숫자 감각을 많이 익혔다. 지금 조정과정에서 빠르게 합의금을 계산해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시절 훈련 덕분인 것 같다.
이후 나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외교통상부에 사무관으로 임용돼 자유무역협정(FTA),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 통상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익숙하고 편해진 법정에 비해 외국과의 협상장은 무척 낯선 환경이었다. 협상 전에는 관계부처 대책회의가 필요했다. 어느 부처는 농산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고, 어느 부처는 상품의 수출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상충되는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하나의 정부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국과 협상하는 것은 더 복잡했다. 공통되는 의견을 통합안으로 만든 뒤 다른 의견은 서로 주고받기식으로 합의해 나갔다. 이 모든 경험이 ‘협상’을 기반으로 합의를 도출하는 민사조정 업무의 기초체력이 됐다.
약 3년간의 공직생활 후 다시 로펌으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공익적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 소년사건 국선보조인 업무를 시작했다. 특히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화해를 돕는 전문상담위원들을 만난 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큰 축복이었다. ‘회복적 정의’를 통해 법이 단순히 처벌과 배상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적성과 직업은 거리가 멀다. 커리어도 뒤죽박죽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외교부 경험을 살려 남들이 선망하는 대형로펌 통상팀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소년사건 보조인 활동도 기존에 하던 일과 관련 없었다. 그러나 과거의 모든 경험이 융합돼 현재 하고 있는 민사조정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어느 때보다 조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이 보람되고 즐겁다.
그래서 내게 질문하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도, 커리어가 일관성 없어 보여도 괜찮다고. 무엇을 하든 지금 하는 일에 진심을 다한다면 모든 경험이 미래의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고.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고, 그때 ‘이건 내 자리’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차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