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른바 ‘경주 선언’으로 불리는 공동성명 채택을 둘러싸고 남은 기간 회원국 간 치열한 논의가 펼쳐질 전망이다. 30여년간 자유무역질서를 강조해 온 APEC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을 두고 일부 국가에서 이견이 나오는 탓이다.
한국이 의장국인 제32차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다. 이에 앞서 10월 29~30일에는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가 예정돼 있다. APEC은 정상회의 이후 21개 회원국의 컨센서스(의견 일치)로 채택된 공동성명을 발표해 왔다.
윤성미 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은 22일 “그동안 사상 최대 규모의 분야별 장관회의와 고위급 대화가 고용·교육·통상·여성경제·디지털 인공지능(AI)·에너지·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최됐다”며 “21개 회원국 간 컨센서스에 의거한 합의 문서가 도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 간 공동성명은 21개 회원국 전원 합의를 기반으로 발표된다.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하는 내용은 들어갈 수 없다. 아직 정상회의까지 한 달 넘게 시간이 있지만 공동성명을 내기 위한 21개 회원국 간 의견 조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발 관세전쟁 등 강대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글로벌 경제를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APEC의 기본 정신인 ‘자유무역질서’를 성명에 담을지를 두고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1989년 출범한 APEC은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한 기구로, 그동안 공개된 APEC 공동성명에는 무역자유화, 다자무역체제, 세계무역기구(WTO)를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을 필두로 국제 자유무역질서가 와해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달 미국은 전 세계 각국의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선도해 왔던 WTO 체제의 종말을 고하면서 ‘트럼프 라운드’를 새로운 세계 무역질서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회원국 전체의 동의로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support)를 공동성명에 담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표현 방식과 수위 조절을 위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으나 마지막까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