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고은(34)의 연기 스펙트럼은 꽤 넓다. 나이를 고려하면 더 놀랍다. 영화 ‘은교’(2012)로 강렬하게 데뷔한 후 범죄 누아르 ‘차이나타운’(2015), 가족 드라마 ‘계춘할망’(2016), 로맨스 ‘유열의 음악앨범’(2019), 미스터리 스릴러 ‘파묘’(2024) 등 변화무쌍했다. 강한 캐릭터를 선보인 영화와 달리 ‘도깨비’(2016) ‘유미의 세포들’(이상 tvN·2021) 등 드라마에선 사랑스러운 모습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도 역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쾌활함과 진중함을 오가며 세밀하고도 깊은 감정 연기를 펼쳤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22일 만난 김고은은 “작품이 내게 맡겨졌을 때 내가 해내야 하는 역할부터 생각했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야 했다”면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은중과 상연’은 초등학교 시절 만나 서로를 질투하고 동경하며 40대가 될 때까지 세 번의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한 두 친구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의 시간을 따라가는 15부작 드라마다. 우정을 둘러싼 미묘한 감정선을 그려낸 섬세한 연출이 공감과 호평을 끌어냈다. 지난 12일 공개된 작품은 뜨거운 입소문에 힘입어 18일부터 넷플릭스 국내 시청 1위로 올라섰다.
김고은은 “좋은 작품을 선보였다는 안도감이 든다”면서 “주변에서도 ‘이런 작품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그는 “이 작품을 만난 시기에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경험을 했다”며 “일상에서 겪은 감정을 작품 안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기한 인연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아역이 연기한 10대를 제외하고 20~40대에 걸쳐 표현해야 했다. 김고은은 “20대 초반은 실제 저의 20대를 떠올리며 연기했다. 볼살이 통통한 느낌을 내고 싶어 살도 약간 찌웠다”며 “가장 활발히 일하는 시기인 30대는 사람들과 교류가 잦은 느낌이 묻어나도록, 40대는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좀 더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연기했다”고 전했다.
은중은 어릴 적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매사에 밝고 당당한 인물이다. 공부 잘하는 부잣집 딸 상연은 은중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김고은은 “은중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만 동시에 ‘난 가난해서 창피했어’라고 솔직히 말할 줄도 아는 친구”라고 설명했다.
작품 수가 쌓이면서 주연으로서의 무게는 더해진다. 그는 “매 작품을 마치고 부족했던 점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계속 배워나가고 있다. 시간과 경험이 주는 성숙함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지난한 과정 안에서도 작품이 사랑받을 때 느끼는 보람과 뿌듯함이 크다”고 미소를 지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