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사각지대 ‘비혼모’ 실태파악도 제대로 안된다

입력 2025-09-23 02:05

두 아이의 엄마인 이샘나(39)씨는 출산 당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를 꼭 갖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 후 출산은 어렵다고 봤다. 이씨는 정자은행을 운영하는 덴마크로 가서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도 사실상 기혼 여성만 가능했다. 이씨는 22일 “한국어로 검색해도 자료가 없어 해외 블로그를 뒤지면서 (출산을) 준비했다”며 “비혼 여성이 출산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제도적 장벽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최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전제로 비혼 출산 관련 제도 개선을 주문하면서 미혼모 지원에 초점을 둔 지원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한부모가족지원법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한 미혼모를 상정해 지원책이 설계돼 있다.

앞서 강 실장은 지난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비혼 출산이 늘어나는 등) 현실이 바뀌고 있다”며 “비혼 동거에 대해 새로운 가족의 유형으로 공식 인정하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혼모의 경우에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혼모와 유사성이 있지만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려는 의사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2.8%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혼 출산에 대한 실태 파악이 이뤄진 적은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 수는 1만3827명(5.8%)으로 집계됐다. 2020년 6876명(2.5%)보다 배 이상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결혼 전이나 이혼 후 동거 상태에서 출산한 경우나 자발적 비혼 출산 등이 모두 포함됐다.

정부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비혼 출산 관련 제도적 지원 검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법적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정책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비혼 출산 특성을 조사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초 발표될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비혼모 등 법률혼 외의 대안적 가족에 대해 권리보장 방안을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는 난임 시술 대상을 부부에서 비혼 여성까지 확대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일명 독립출산지원법)이 발의된 바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비혼 여성은 정자 공여나 시험관 시술을 국내에서 받기 어렵고, 출산·육아휴직 등 복지 제도도 혼인을 전제로 설계돼 공백이 생긴다”며 “비혼 동거 혹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비혼모도 보편적인 주거·세제·양육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