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에 20번 정도 섰지만, 레벤트리트 콩쿠르 본선 무대만큼은 잊을 수가 없어요.”
원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7)가 오는 11월 8년 만에 다시 서는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앞두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진행한 ‘정경화&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레벤트리트 콩쿠르 당시 카네기홀의 음향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작은 소리가 홀의 끝까지 섬세하게 전달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경화는 1967년 권위 있는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이스라엘 출신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세계 주요 콘서트홀의 러브콜을 받아 무대에 서고, 다수의 명반을 발매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정경화는 20대에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6곡) 중 일부를 음반으로 냈다. 하지만 “젊어서 할 곡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완성한 뒤 발매하겠다”며 2016년에야 전곡 음반을 내놨다. 그 이듬해 카네기홀 데뷔 50주년 공연에서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카네기홀 125년 역사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 것은 정경화가 처음이었다. 그는 “유학 시절 받은 첫 악보였다. 항상 전곡 연주를 꿈꿔왔지만 50년 후에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엔 오랜 음악 동반자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한다. 케너는 1990년 쇼팽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로, 영국 왕립음악원 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해왔다. 2011년부터 케너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정경화는 그를 “영혼의 동반자”라고 표현할 만큼 깊은 음악적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은 오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국내 투어를 이어간다. 다음달에는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13일), 고양아람누리(21일), 통영국제음악당(26일)에서 공연한다. 11월 북미로 무대를 옮기며,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11월 7일로 예정됐다.
연주 프로그램은 슈만과 그리그,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다. 특히 프랑크 소나타는 정경화가 사랑하는 작품이다. 그는 “케빈과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다리 부상으로 연주를 쉬었던 정경화는 “다시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감회가 깊다”며 “몸 상태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좋은 작품을 골라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