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대기업들이 잇따라 중고 명품 영역에 진출하면서 시장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개인 간 거래(C2C)가 주를 이뤘던 중고시장은 기업이 직접 유통 전반을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했다. 패션 브랜드들은 자사몰 중심의 온라인 생태계를 구축해 거래 흐름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기존 리셀(재판매) 플랫폼들은 오프라인 체험과 검증 시스템으로 실물 기반 신뢰 확보에 나섰다.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며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론칭한 무신사의 중고 거래 서비스 ‘무신사 유즈드’는 출시 2주 만에 판매자 수 1만명, 누적 입고 물량 6만점을 돌파했다. 기존 중고 플랫폼들이 판매자와 구매자를 매칭해주는 수준에 그쳤던 것과 달리, 무신사는 C2B2C(소비자가 기업을 거쳐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 방식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무신사는 현재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은 브랜드의 중고제품까지 매입하고 있다.
LF는 이달 중고 의류를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 ‘엘리마켓’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판매를 신청하면 물품 수거와 검수, 매입가 산정, 등급 분류, 창고보관, 재판매까지 전 과정을 플랫폼이 담당한다. 대금은 LF몰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엘리워드’ 포인트로 지급된다. 자사몰 재유입을 유도하는 ‘락인(Lock-in) 전략’의 일환이다. 코오롱FnC 역시 2022년부터 자사 브랜드 중고 제품을 매입해 되파는 ‘오엘오 릴레이마켓’을 운영하며 판매자에게 자사몰 포인트를 지급하고 있다.
반면 크림·구구스 등 온라인 기반으로 성장한 리셀 전문 플랫폼은 신뢰도 확보 수단으로 오프라인에 집중하고 있다. 정품 여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물 기반 체험 요소가 가품 우려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매장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크림은 다음 달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네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열 예정이다. 스니커즈 중심 매장 구성에서 의류, 키링, 액세서리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확대한다. 스타일 커뮤니티와 트렌드 플랫폼으로의 확장해 취향과 문화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구구스는 직접 보고 만진 후 구매할 수 있는 ‘보고구매’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28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며, 내년까지 6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검수 인력도 90명 이상을 확보해 정품 감정 시스템 강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구구스의 지난해 거래액은 2255억원으로, 3년 전보다 약 46% 증가한 수치다.
중고 거래 시장의 확대는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2008년 4조원 수준이던 국내 중고 거래 시장은 올해 4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검수 과정을 거친 중고 명품은 여전히 가치가 인정되기 때문에 이용률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