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금융 탈 쓴 그린 워싱, 정책 자금서도 논란 빚는다

입력 2025-09-23 00:21

산업은행·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무역보험공사 5대 금융 공기업이 지난해 기후금융 명목으로 집행한 정책 자금의 20%가량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만드는 데 투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LNG에는 ‘천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석탄보다 많아 기후 위기를 앞당긴다는 비판이 많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5대 금융 공기업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기후 위기 대응 정책 자금으로 94조1715억원을 집행했고 이 중 17조6846억원(18.8%)이 LNG 운반선 금융으로 쓰였다.

이 자금은 대부분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3대 조선사에 LNG 운반선을 발주한 해운사 등에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3대 조선사는 지난해 중국과 그리스,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LNG 운반선 51척을 수주했다.

국제 연구에 따르면 LNG는 생산부터 운송, 소비까지 전 주기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이 석탄보다 33%가량 많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배출량 평가 기준을 운송에서 전 주기로 바꾸면서 LNG를 친환경 연료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LNG 운반선은 운항 과정에서도 엄청난 온실가스 발자국을 남긴다. 국제 표준으로 꼽히는 17만5000㎥급 LNG 운반선 한 척이 1년간 운행하며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약 1230만t에 이른다. 서울에 거주하는 모든 가구가 1년간 사용하는 전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세 배나 되는 규모다.

또 LNG 운반선은 운항 과정에서 최대 15%의 메탄을 연소하지 않은 상태로 대기 중에 직접 배출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 대비 최대 80배 강한 온난화 효과를 내 반드시 완전히 연소해 배출해야 하는 온실가스로 꼽힌다. IMO는 LNG 운반선의 메탄 직접 배출을 선박업계의 가장 큰 지구 온난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저감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다만 한국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은 국제 기준과 다르다. 금융위원회가 2024년 제정한 ‘녹색 여신 관리 지침’을 보면 LNG는 중간 단계인 ‘황색’으로 분류돼 있다. 이 지침대로라면 5대 금융 공기업의 LNG 운반선 금융 투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유럽투자은행(EIB)과 영국 수출입은행(UKEF), 덴마크 수출신용기금(EIFO)과 같은 유럽연합(EU) 내 금융 당국이나 금융 공기업은 수년 전부터 LNG를 화석 연료로 규정하고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 당국이 관련 규제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환경단체인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가스팀 김은비 연구원은 “온실가스 다배출 물질인 LNG가 기후 정책 자금 집행 대상에 포함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