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사진) 대법원장이 22일 “세종대왕은 공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민심을 수렴해 백성의 뜻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에 사법부 의견수렴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세종대왕은 소통과 상생의 가치를 중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종대왕은) 백성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국정 운영에서는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며 “법의 공포와 집행에 있어서도 백성들에게 충분히 알렸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또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았다”며 “백성을 중심에 둔 세종대왕의 사법 철학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법의 가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권영준 대법관도 특별세션 발표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법부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유무형의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14세기 ‘법관 세종’의 업적을 돌이켜보는 것은 인류 전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 사법부가 밝힌 입장과 결을 같이한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사법의 본질적인 작용과 현재 사법 인력의 현실에서 어떤 것이 가장 국민에게 바람직한지 공론화를 통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법원장들도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권의 사법개혁에 대한 사법부 대응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고법은 이날 3대 특검 사건의 2심 재판에 대비해 ‘집중 심리 재판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특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발의했는데, 법원이 자체적으로 특검 사건 대응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오는 25일 대법관 수 증원안과 대법관 추천 방식 관련 토론회를 연다.
한편 이날부터 이틀간 열리는 세종 국제 콘퍼런스는 세종대왕의 법사상을 공유하고 법치주의의 미래와 사법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대법원이 9년 만에 개최한 국제 행사다. 싱가포르·일본·중국 등 10여개국 대법원장과 대법관, 국제형사재판소(ICC) 전현직 소장 등이 참석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