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시화되는 북·미 대화… 정교한 외교 전략 필요하다

입력 2025-09-23 01:30
국민일보DB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보도된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이 “임시적 비상조치로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당분간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미국이 ‘피스메이커’로 나서면 ‘페이스메이커’로 보폭을 맞추겠다는 것인데 북·미 대화에서 우리의 입지가 지나치게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패싱되지 않도록 한·미 간 대북 정책 조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강조하고 있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축소→비핵화로 이어지는 ‘3단계 비핵화론’의 연장선상이다. 대북 관계의 진전을 위해 주도적 역할이 아닌 보조 역할을 하더라도 북한을 테이블로 끌어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마침 북·미 정상도 대화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며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한다면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비핵화는 전제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당시 “올해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종식을 추진하다 난관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가 충분하다. 문제는 미 행정부 차원에선 북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관계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불렀던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목표를 명시하지 않은 채 대북 제재를 해제해주고,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어 북·미 대화를 위한 접촉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협조한다는 입장이지만 모든 북·미 대화가 긍정적인 건 아니다. 이달 초 북·중 정상회담 발표문에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고 북한을 제어할 수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포기할 수 없다. 한·미 공조를 굳건히 다지면서 핵보유국이란 전제가 북·미 대화 테이블에 오르지 않도록 정교한 외교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