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비 때문에 집안이 무너지는 ‘간병 파산’, 돌봄 부담에 지쳐 환자를 살해하는 ‘간병 살인’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자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간병비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구조적 위험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간병비 급여화’를 공론화한 건 의미가 크다. 가족에게 떠넘겨졌던 간병비를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가 분담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2일 공청회에서 2030년까지 약 6조5000억원을 투입해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30%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현재 월평균 200만~267만원인 간병비가 60만~80만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니 반가운 일이다. 해마다 증가한 사적 간병비는 이미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간병비를 진료비처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면 가족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간병은 사회적 문제다. 의료 필요도가 높은 중증 이상의 환자에게 양질의 간병 서비스를 보장하고, 과잉 입원과 불필요한 장기 입원은 줄이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개인 부담을 사회가 나누는 첫걸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건보 재정이 이미 적자로 가는 상황이라 재정 지속 가능성이 문제다. 기획재정부 장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내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2033년이면 준비금이 고갈된다. 수조원대 재정을 쏟아붓는다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간병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요양병원 구조 개편, 간병 인력 확충, 불필요한 장기입원 억제 등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장기입원 페널티나 경증환자 본인부담률 인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간병비 급여화가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이 되려면, 서비스 질 개선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담보해야 한다.
단기적 지원책을 넘어 제도의 뼈대를 튼튼히 다지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이번 정책이 ‘가족의 고통을 사회가 함께 나눈다’는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