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코로나19로 위험에 처했다. 미국이 가진 모든 지식과 자원, 두뇌를 끌어 모으자. 드디어 mRNA 백신을 만드는 기적을 이뤘다. 효능은 90%. 끝내주게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백신을 안 맞을 거다. 미국인은 X 같은 백신을 절대 안 맞는다. 당신들이 맞겠다고? 꺼져라. 안 준다. 전부 강물에 버릴 거다. X 같은 백신 꺼져라.”
미국 코미디언이 “가장 미국스러운 바보짓”이라는 자조와 함께 요약한 팬데믹 시기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소동이다. 코미디가 폭로하는 건 미국의 두 얼굴. 혁신으로 인류를 구한 슈퍼히어로이자 음모론으로 시스템을 공격하는 빌런, 최고와 최악의 공존이다. 불행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영웅과 악당의 역학이 뒤집혔다.
‘백신 음모론자’로 의심받아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수억 달러 규모의 백신 연구를 중단시키고, 관련 기관과 위원회로부터 관료와 전문가들을 줄줄이 해고했으며, 그 자리를 과거가 미심쩍은 비전문가들로 채워 넣었다. 대표적인 게 오래 전 사실무근으로 확인된 ‘백신과 자폐의 연관성’을 새삼 연구하겠다며 내세운 데이터 분석 책임자. 의사면허 없이 자폐 어린이에게 의료행위를 하다가 제재를 받은 인물이다. 이제 이런 이들이 인구 3억5000만명 미국의 보건 정책을 결정한다.
현장 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신생아 필수 접종부터 코로나·독감까지 백신 권고는 최대한 접근이 어렵도록 바뀌고 있다. 일부 어린이 접종률이 집단면역의 한계선 밑으로 떨어진 올해, 미국의 홍역 발병률은 30여년 만에 최고를 찍었고, 10년 만에 첫 사망자가 나왔다. 보도되기로는 부모가 백신을 거부한 6살 아이였다. 올해 코로나 감염으로 사망한 아동 150여명은 전원 백신 미접종자. 절반은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아이들이었다.
반(反)백신주의자들은 환호했다. 최근 미국 최초로 입학 전 의무접종 권고를 폐지한다고 발표한 플로리다주. 기자회견장은 기쁨과 흥분으로 들끓었다. “누가 당신과 당신 아이 몸에 무엇을 넣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보건국장 열변에는 박수가 쏟아졌다. 기본 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교실에 모이면 올겨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케네디 장관 말처럼 “홍역에는 생선 간유와 비타민A가 특효약”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안전해졌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역설일까. 이미 구한 목숨과 막아낸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백신 덕분에 유아기 아이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게 된 요즘, 부모들의 문화사전에는 홍역에 걸려 죽거나 영구 장애를 입은 아이들 이야기가 사라졌다(‘페이크와 팩트’ 중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왜 안전해졌는지 잊고 말았다. 백신의 성취 역시 잊혀졌다. 공백을 메운 건 새로운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땔감으로 자라난 음모론자들이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미국의 전방위 퇴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인종주의와 들끓는 정치적 폭력 때문만은 아니다. 주류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수상한 이들과 그들이 뽐내는 자신만만한 무지는 더욱 두려운 미래를 예고한다. 과학과 지식에 대한 부정은 이들이 대중을 열광시키는 정치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들의 무지는 의도된 것이고, 그들의 몽매함에는 목표가 있다.
오랫동안 미국은 과학과 진보의 최전선을 지켜 왔다. 선구자 미국이 지금 내부의 어리석은 열정에 굴복해가는 중이다. 더불어 인류가 품은 오랜 신념, 과학과 지성이 우리를 더 나은 앎의 세계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있다. 불길한 광경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