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가입자들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KT는 번호이동에 따른 위약금 면제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회사 측에 귀책 사유가 있는 만큼 이용약관에 따라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는 모습이다.
21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 요구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친 기자간담회에서는 관련 질문에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내놨다. 국회 질의에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상황이다.
KT가 번호이동에 따른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용약관에 그 근거가 있다. KT 이용약관 제39조 5항을 보면 KT 고객은 ‘기타 회사의 귀책 사유인 경우’가 인정되면 위약금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 SK텔레콤도 비슷한 내용의 자사 약관에 따라 해킹 사태 이후 계약을 해지한 고객들의 위약금을 면제해 줬다.
KT가 위약금 면제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 배경에는 추가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KT는 지난 5일 새벽 비정상적인 소액결제 시도를 차단한 이후에는 관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약금을 면제할 경우 입게 될 금전적 손실도 부담이다. 위약금 납부 의무가 없어지면 KT와 약정을 맺었던 가입자들이 부담 없이 다른 통신사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지난 7월 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폐지돼 보조금 제한이 사라지면서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한 보조금 투입 비용이 훨씬 많이 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위약금 면제에 따른 직접적인 손실과 매출 하락분 등을 합해 향후 3년간 7조원가량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던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달리 KT는 이미 수백명의 피해자가 나온 만큼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단 소액결제로 시작된 사태가 서버 침해 정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KT가 지금까지 선을 그어온 ‘복제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일단 KT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제재 수위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위약금 면제 조치 관련 질의에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 이번 침해 사고가 KT 이용약관상 위약금 면제 조항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