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해외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 수수료를 현재보다 100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외국인 직원을 많이 고용한 미국 기업들은 H-1B 비자 보유 직원들에게 급히 귀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백악관 대변인이 연간 납부가 아닌 일회성 수수료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혼선이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전날 미 정부가 H-1B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아마존 등은 해외 체류 중인 H-1B 소지 직원들에게 귀국할 것을 권고했다. MS는 직원들에게 “H-1B를 소지하고 미국에 체류 중인 경우 당분간 미국에 머물러야 한다”고 공지했다. MS의 H-1B 보유 직원은 5200명가량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직원들에게 “국제 여행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모를 보냈다. 미국 외부로 출장 또는 여행 중인 H-1B 소지 직원들 사이에선 재입국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포고문을 검토한 이민 전문가와 기업 임원들은 ‘문구가 모호하다’면서 H-1B 소지 직원들에게 출장 계획을 즉시 제한하라는 경고를 내렸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뒤늦게 새 방침은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된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알려지기까지 기업들은 구체적인 정책 내용 파악을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미국에선 비자 수수료 인상이 기술 인재 유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약 50만명이 H-1B 비자로 미국에 체류 중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IT업계 인사들 상당수가 이 비자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다.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많은 정책이 반이민적인 성격을 띠면서 과거와 같은 수준의 인재들이 대학원이나 대학교에 오거나 미국에 일하려고 오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에 인도는 즉각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해 기준 H-1B 소지자의 70% 이상이 인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인도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숙련된 인재의 이동과 교류가 미국과 인도의 부 창출에 크게 기여해 왔다”며 “상호 이익을 고려해 최근 조치를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