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해외 ‘전문직 비자’인 H-1B 비자에 대해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의 수수료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이 충격과 공포에 빠진 모습이다. 미국의 강경한 반이민주의를 보여준 이번 조치로 한·미 간 비자 제도 개선 협의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백악관은 20일(현지시간) 설명자료를 내고 “미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는 남용을 막기 위해 새로운 H-1B 비자 신청 시 10만 달러의 추가 납부금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전날 H-1B 비자 수수료를 현 1000달러의 100배인 10만 달러로 올리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0만 달러 납부는 신규 비자에만 적용되며 갱신이나 현재 비자 소지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또 해당 수수료가 연간 납부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수수료’라고 밝혔다. 이는 하워드 러트릭 상무장관이 전날 포고문 서명식에서 10만 달러가 ‘연간 수수료’라고 말한 것과 달라 적용 대상과 범위를 두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숙련된 해외 인재가 미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더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H-1B 비자의 최대 수혜자인 기술 기업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라며 “새 규정이 유지될 경우 합법적 이민의 주요 경로도 제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전문 직종에 적용되는 비자다. 연간 발급 건수가 8만5000건으로 제한돼 있고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기본 3년 체류가 허용되며 연장도 가능하다. 트럼프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H-1B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 기업들은 조지아주 구금 사태 이후 미국에서 근무할 인력에 대해 L-1(단기 상용) 또는 E-2(투자자) 비자를 발급받도록 해 이번 조치로 인한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지 기업들은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비용 상승 등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한국상공회의소(코참)는 지난 4월 발간한 통상백서에서 “기업들이 미국 내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한국어와 영어 모두 능통한 인재가 필요한데 H-1B 비자 발급 제한으로 인력 확보가 어려워 사업 운영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H-1B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2289명으로 전체 쿼터의 2.6%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들은 미 정부가 비자 제도 개선 협의 과정에서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내걸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이번 조치가 우리 기업과 전문직 인력들의 미국 진출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미측과 필요한 소통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권지혜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