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21일 대구에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를 열었다. 내란특검의 국힘 수사 확대, 더불어민주당의 내란재판부 강행과 사법부 공격 등을 야당 말살 시도이자 독재로 규정하며 지도부와 의원들이 총출동해 장외투쟁에 나섰다. 국힘은 최근 대법원장 사퇴 압박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다. 집회에서도 “이재명 당선무효” 같은 구호가 등장했고, 장동혁 대표는 “(멈춘 재판을 재개해) 이재명을 끝내야 한다”고 외쳤다. 민주당은 이를 ‘대선 불복’이라 몰아세웠다. 정청래 대표는 장외로 나간 야당을 “가출한 불량배”라 칭하며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 투정”이라 비아냥댔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탄핵 운운과 장외투쟁은 명백한 대선 불복”이라고 했다.
독재 정권을 끌어내리자는 야당의 공격과 이를 대선 불복 행태라 비난하는 여당의 반격은 선명한 기시감을 줬다. 지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을 공공연히 말했고, 여당이던 국힘은 그런 민주당을 대선 불복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 정권이 무너지고 여야가 바뀐 지금, 두 당은 얼마 전까지 상대방 것이던 논리와 구호를 각각 가져다 서로 싸우는 데 재활용하고 있다. 국힘의 장외투쟁은 문재인정부에서 야당이던 2020년 이후 5년8개월 만이다. 그 사이엔 윤석열정부에서 야당이던 민주당이 장외로 나갔다. 민주화 이후 숱하게 정권이 바뀌었지만, 대화와 타협을 못해 국회를 뛰쳐나가는 정치 행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주 국회는 ‘여야 격돌 주간’이라 불리고 있다. 정부조직법, 방송통신위원회법 등 합의에 실패한 법안이 잔뜩 테이블에 올라 정면충돌이 예고됐다. 야당은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로 대응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 한다. 반대하는 법안에만 진행했던 걸 전면 확대해 법안 처리를 무조건 지연시키는 사실상 국회 보이콧 전략이다. 여당은 국힘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의 소관 법안을 전부 패스트트랙에 올리려 하고 있다. 대화와 설득, 협상과 타협의 과정을 아예 건너뛰고 야당을 우회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대결 정치 속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 합의한 ‘민생경제협의체’는 좌초해 간다. 지난주 열려던 첫 회의는 무산됐고, 언제 열자는 말도 없다. 민주당은 “국힘이 파기했다”고, 국힘은 “민주당이 뒤통수를 때렸다”고 책임을 넘기며 비난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처음 가시화했던 협치 가능성이 사그라지는 정치판에서, 지난 정권의 극한 정쟁이 양측 입장만 바뀐 채 똑같은 모습으로 무대를 차지했다. 계엄과 탄핵을 겪으며 국민이 그토록 원했던 정치의 복원을 여야는 허무하게 저버리려 하고 있다. 이런 정치를 보자고 그 혼돈을 버텨낸 게 아니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