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차 유엔총회 참석차 22일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교착 상태인 관세협상을 고려해 한·미 정상회담은 우선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반면 기조연설문을 통해 북한에는 한반도 평화 구축 및 대화 테이블 복귀를 위한 담대한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미국의 관세협상 압박에 대응하면서도 북한에는 대화 의지를 전달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떠나는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은 미국의 과도한 관세협상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상 간 만남을 가질 경우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우리가 고민해서 선택해야 할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양측 간 실무 협상이 표류 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가 ‘되돌릴 수 없는’ 청구서를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지금 만나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깔린 셈이다.
최근 미국은 최근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 후속 협상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공학 등 전문직 종사자에게 적용되는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기존의 100배 수준으로 인상한다고 밝혀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한국 기업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며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회담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세 협상은 각료급 등에서 계속 논의가 진행 중이며 정상 차원까지 가야 할 현안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재는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대북 메시지 준비에는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 비전을 제시하는 만큼 대북 메시지가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종전선언 제안이나 북·미 정상회담 촉구처럼 직접적인 요구는 피하고, 그동안 이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비핵화 3단계 접근법’과 제재 완화·보상 수준에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구하는 정도의 메시지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한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인공지능(AI)과 국제 평화·안보’를 주제로 토의를 주재하며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또 외교 일정 외에도 민생경제 행보도 병행한다. 방미 첫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를 만나 AI·에너지 전환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마지막 날에는 미국 월가 금융계 인사와 한국 기업인이 함께하는 한국경제설명회(IR) 투자 서밋 행사를 주재할 예정이다.
윤예솔 최승욱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