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일반 난청 아닌 ‘청각신경병증’ 의심

입력 2025-09-23 00:03 수정 2025-09-23 00:56
게티이미지뱅크

소리는 들리는데 말소리만 유독 잘 안 들린다면 단순 난청이 아닐 수 있다. 특히 보청기를 착용했는데도 말소리 이해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면 ‘청각신경병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일반 감각신경성 난청은 달팽이관의 유모세포가 손상되면서 소리 자체가 작게 혹은 왜곡돼 들리는 것이 특징이다. 청각신경병증은 달팽이관 기능은 상대적으로 보존돼 있는데, 청신경이나 시냅스(신경세포 간 접점)에 문제가 생기고 뇌로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이 깨져 생긴다. 그래서 소리 탐지는 어느 정도 되지만 실제 대화에선 말소리 구분 능력(어음 인지도)이 현저히 떨어진다.

최병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22일 “청각신경병증은 청각 신호 전달 경로의 손상으로 뇌에서 말소리를 변별하지 못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노화와 당뇨병 같은 대사질환, 항암제나 특정 항생제 같은 약물 독성, 말초신경병증 등 다양한 후천적 원인이 관여할 수 있고 드물지 않게 유전적 요인도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난청 환자의 10% 안팎이 이런 청각신경병증에 해당된다. 신생아와 소아, 성인 등 모든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다.

환자들은 “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한 환경에서도 대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주변이 시끄러우면 말소리를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반대로 일반 난청은 TV 소리가 처음부터 작게 혹은 흐릿하게 들려서 볼륨을 크게 높여야 한다.

가장 큰 차이는 보청기에 대한 반응이다. 일반 난청은 보청기를 통해 소리를 크게 하면 말소리 구분에 큰 문제가 없다. 반면 청각신경병증은 보청기 착용이 사실상 도움 되지 않는다. 소리를 증폭해도 청각 신호가 뇌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말소리 구분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아야 청각 재활이 가능한데, 소리가 일정 수준 들리는 것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 수술 시점 판단에 혼선을 빚기 쉽다. 최 교수는 “초기에는 청력검사 수치상 남아있는 청력에 비해 어음 인지도가 불균형하게 낮은 것이 청각신경병증의 특징”이라며 “질환이 진행되면 청력 자체, 즉 소리 탐지 능력도 떨어져 일반 난청과 검사 결과가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단지 청력검사 수치만으로는 두 질환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환자 자신도 잘 들리지 않으니 그냥 난청이라고 생각해 보청기 착용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오진과 지연 진단이 흔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진료 현장에선 보청기를 바꿔가며 수년간 사용했는데도 말소리 구분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 인공와우 수술로 넘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미 청신경 위축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수술 후 언어재활 효과가 제한적일 때도 있다. 최 교수는 “조기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더라면 어음 인지도가 더 잘 회복됐을 환자들이 일반 난청으로 오진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보청기 치료만 고집하며 시간을 허비하다 기회를 놓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진행된 청각신경병증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데, 모든 병원에서 난청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지는 않다.

최 교수 연구팀은 대부분 병원에서 촬영 가능한 MRI로 청각신경병증과 단순 난청을 효과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연구팀이 2017~2023년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40~65세 61명을 분석해 청각신경병증 환자는 질환 초기 단계부터 일반 난청 환자에 비해 MRI 영상에서 청신경이 유의하게 위축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신호 전달이 이뤄지는 시냅스 뒷부분에 손상이 있을 경우 청신경 위축이 더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MRI에서 청신경 위축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라도 신경이 완전히 퇴화하기 전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면 언어 이해 능력이 효과적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청각신경병증을 조기에 선별해 수술받는 것이 관건이며 이를 위해 일반 난청보다 훨씬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이런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이과학·신경이과학(Otology&Neurotology)’ 최신호를 통해 학계에 보고했다.

최 교수는 “MRI를 통해 청신경 위축 정도를 확인하면 보다 빨리 청각신경병증임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으니 의심 증상이 있다면 단순 난청으로 치부하지 말고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기를 권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