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리 병원과 협업하던 한 기업 대표가 길에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타 병원에 긴급 이송된 일이 있었다. 그는 몇 달 전 우리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혈압과 혈당이 경계 수치였으며 허리둘레도 기준치를 초과한 상태였다. 생활 습관 개선을 권해도 그는 “피곤해서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행히 응급조치로 목숨은 건졌으나 이는 결코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었다.
유난히 피곤하거나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잠이 잘 안 오며 아침에 심장이 빨리 뛴다면 어쩌면 몸이 보내는 조용한 경고일지 모른다. 예측의학은 이런 신호를 해석해 다가올 건강 문제를 미리 감지하고 예방하도록 돕는 의학이다.
건강 예측 지표는 무척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혈압은 혈관이 얼마나 탄력 있고 스트레스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특히 아침에 측정한 혈압이 평소보다 높다면 전날 수면 상태나 염분 섭취, 심리적 긴장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의 전조가 될 수 있다. 혈당과 당화혈색소(HbA1c) 역시 중요한 지표다. 혈당은 우리가 에너지를 처리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수치가 높은 건 당뇨병 위험뿐 아니라 만성 염증과 간 기능 저하, 심지어 인지기능 저하와도 관련이 있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몇 달간의 혈당 상태를 보여주기에 오랜 시간 몸이 어떻게 반응해왔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목할 지표는 심박 수와 심박변이도(HRV)다. HRV는 자율신경계의 균형과 회복 탄력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이 수치가 낮아지면 만성 피로나 우울감, 면역력 저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HRV는 최근 다양한 연구에서 심리적 회복력과 장기 건강을 예측하는 정밀한 생체 신호로 인정받고 있다.
허리둘레 역시 단순한 외형적 지표가 아니다. 허리둘레가 늘어난다는 건 복부 내장지방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는 인슐린 저항성과 고지혈증, 고혈압과 지방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사증후군의 주요 징후다. 남성의 경우 90㎝, 여성은 85㎝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간주한다.
수면의 질도 간과해선 안 되는 중요한 지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한가, 자주 깨지 않았는가, 꿈을 지나치게 많이 꾸거나 악몽을 꿨는가 같은 요소로 결정되는 ‘수면의 질’은 몸의 회복 상태를 반영하는 민감한 창구다. 수면 상태가 나빠지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오른다. 면역력 저하와 혈압 상승, 심장박동 이상 등이 동반되며 이는 곧 만성질환의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예측의학은 이처럼 복잡한 수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몸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 예민하게 감지하고 기록하는 ‘자기 인식’이 출발점이다. 일상의 미세한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건강 예측의 절반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런 예측지표를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아침 기상 직후 심박 수를 1분간 측정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전날 피로와 음주, 수면 상태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므로 자기 패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매달 허리둘레를 측정하고 작은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자. 이 수치는 대사 건강을 예측하는 강력한 신호다. 수면 일기를 작성해 수면 시간과 기상 시 피로도를 점검해보자. 특히 잠들기 어려웠던 날과 깨기 힘들었던 날을 비교해보면 수면의 질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걸음 수나 걷기 속도를 점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루 5000보 이하의 활동량은 장기적으로 심장과 뇌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하루에 한 번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오늘 내 몸은 어떤가.” “어제와 다른 느낌이 있는가.” 이런 단순한 질문이 몸의 언어를 듣는 첫걸음이다.
예측의학의 본질은 주의 깊은 자기 관찰에 있다. 수치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변화에 담긴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건강은 내 몸의 ‘예언’을 내가 매일 듣고 응답할 때 비로소 지켜진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