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식사 챙기는 區·교회… “또래가 만든 반찬 받아가세요”

입력 2025-09-22 03:01
최호권(가운데) 영등포구청장과 청년들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교회에서 직접 만든 반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영등포구청 제공

주말을 앞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교회 지하 식당. 이날만큼은 교회 주방이 청년들의 작은 부엌이자 공동체 현장이었다. 퇴근 직후 교회 식당에 도착한 청년들은 검은 앞치마와 하얀 마스크를 착용했다. 깨끗한 조리대 앞에 서서 베이컨을 굽기 시작했다. 고소한 향이 퍼졌다.

양파와 대파를 잘게 다져 그릇에 담았다. 토마토도 한 조각씩 썰었다. 분주한 손길 사이로 김재식 약선조리명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손톱을 눕혀서 양파를 집고 엄지를 뒤로 젖히세요. 칼질은 천천히.” 칼을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았지만 웃음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반찬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갔다.

청년 10명이 이날 만든 요리는 나초 샐러드와 토마토 치즈 제육볶음. 기름에 달궈진 팬에서 양념에 재워진 고기가 볶아지자 식당 전체가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계량이 꼭 필요하네요.” 최우진(23)씨는 혀를 내두르다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요리는 서툴렀지만 서로가 함께 배우며 만들어가는 시간은 즐거워 보였다.

이날 모임은 영등포구(구청장 최호권)가 교단을 초월한 지역 교회 다섯 곳과 손잡고 시작한 ‘퇴근길 청년한끼’ 사업의 첫 현장이었다. 지난달 구청과 협약을 맺은 대광교회(강현원 목사) 대길교회(백훈기 목사) 대림평화교회(홍영헌 목사) 양평동교회(김경우 목사) 영등포교회(윤길중 목사)는 공간을 제공하고, 우리은행 영등포구청지점이 후원을 맡았다. 구청은 행정력을 지원해 민관 협력 모델을 정립했다. 청년 인구 비율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영등포구에서 청년들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줄 생활 밀착형 복지를 시도한 것이다.

행사는 두 가지로 운영된다. ‘요리 배움’은 청년들이 직접 두 가지 반찬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려면 요리가 기본이다. 이렇게 완성된 반찬은 ‘반찬 나눔’을 통해 다른 청년들에게 전달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퇴근길에 들른 청년(왼쪽)이 또래가 만든 반찬을 받아가는 모습. 영등포구청 제공

이날 청년들이 각자 만든 네 그릇의 반찬 중 세 그릇은 포장을 거쳐 퇴근길에 들른 또래 청년 50명에게 전달됐다. 한 그릇만 만든 본인이 직접 가져갔다. 최호권 구청장은 “영등포 청년 대부분이 부모 곁을 떠나 자립하는 과정에 있다”며 “통신비 교통비는 줄이기 어렵지만 외식비는 이렇게 함께 나누면 아낄 수 있다. 교회 주방이 평일에 비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청년들의 건강한 한끼를 준비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교회 역시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품는 데 앞장섰다. 김경우 양평동교회 목사는 “몇 년 전부터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구청 측에서 추진이 어렵다고 전해 들었다”며 “구청에서 제안했을 때 교회가 먼저 나서기로 했다. 지역 청년들이 교회 지붕 안으로 들어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곧 섬김의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교회 주제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인데, 취지에 꼭 맞는 행사라 당회에서도 만장일치로 협력을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성도들도 취지에 공감해 기꺼이 힘을 보탰다. 이날 주방 한편에서 재료를 다듬던 김점순(77) 권사는 “손주 같은 청년들이 요즘 밥 먹기 힘들다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나왔다”며 “정성껏 만든 반찬을 먹고 교회도 찾고, 부모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청년들이 되면 좋겠다. 오늘은 청년들을 위해 힘을 보태니 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참가자 안휘현(31)씨는 “결혼 후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어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며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셔서 쉽게 할 줄 알았는데 정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 박세빈(25)씨는 “준비가 잘돼 있어 요리를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며 “칼질 설명이 유익했고 가족들과 나눠 먹을 생각에 뿌듯하다”고 전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