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탑골공원과 동대문구 제기동·청량리역은 대표적인 ‘노인들의 성지’였다. 2018년 서울시가 공개한 무임 교통카드 이용 현황에 따르면 무임 승차자의 하차역 1위는 종로3가역으로 1.7% 비중을 차지했다. 청량리역(1.5%), 제기동역(1.2%)이 뒤를 이었다. 무임 교통카드 보유자 중 84%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를 통해 대략적인 노인들의 행선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탑골공원은 장기를 두는 노인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원 곳곳에는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바둑·장기 등 오락 행위, 흡연, 음주·가무, 상거래 행위 등은 모두 금지됩니다’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국가유산 사적인 탑골공원을 보호하기 위해 7월 31일부터 바둑, 장기 등 오락 행위를 제한했다. 제한 구역은 공원 담장 안쪽과 밖 전체다. 이에 따라 담장 바깥으로 장사진을 이뤘던 장기, 바둑 두는 노인들의 모습도 사라지게 됐다. 장기판 철거를 유도하면서 무질서한 행위가 크게 줄고 공원 환경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비판도 있다. 가뜩이나 갈 곳이 없는데 장기판을 없애야만 했냐는 것이다. 제기동·청량리 일대는 2010년대 ‘노인의 강남’으로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발길이 뚝 끊어졌다. 이 일대에서 노인들이 많이 찾았던 콜라텍들이 불황을 겪으면서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무임 하차 장소 중 종로3가·제기동·청량리 등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무임 하차역 중 종로3가역 비중이 줄어든 데는 오락 행위 금지 이전에 서울시의 탑골공원 정비 사업도 한몫했다. 노인들은 최근에는 고속터미널이나 사당, 잠실 같은 번화가로 많이 향하고 있다. 마땅히 쉴 곳이 없자 번화가를 떠돌아다니는 양상이다.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성지에서도 밀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처량할 뿐이다. 기존 성지를 대체할 새로운 노인 안식처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