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2년 전 본 조지아, 그리고 지금

입력 2025-09-22 00:38

130여개 한국 기업이 일자리
수만개 만들었는데… 결국
돌아온 건 한국인 추방인가

2년 전인 2023년 10월 미국 조지아주의 한 한국 대기업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넓은 부지 위로 철골 구조물이 높이 솟아 있었고, 하루 400명 넘는 노동자가 80여대의 중장비를 동원해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라틴계 노동자, 흑인 청년, 한국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하는 모습은 단순한 건설 현장이 아니라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동맥처럼 보였다. 공장 하나가 덜렁 들어서는 것이 아니었다. 지역 경제를 숨 쉬게 하고 주민 생활을 떠받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조지아주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의 투자를 거듭 강조했다. 당시 130여개 한국 기업이 조지아에 진출해 있었고, 누적 투자 금액만 110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5조4000억원)에 달했다. 대도시인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시골에 가까운 조지아에까지 한국 기업이 터를 닦아 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지금은 기업 수가 140여개로 늘었고, 투자 규모도 훨씬 커졌다. 자동차·배터리뿐 아니라 태양광 등 섬유 중심이던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조지아가 선택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항만·공항·고속도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법인세 감면과 ‘퀵 스타트’ 같은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훌륭하다. 주정부 관계자 말대로 “미국에서 비즈니스하기 가장 좋은 주”라는 평가가 과장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한국 기업의 투자와 주정부의 지원이 맞물리며 지역 경제 전반에 일자리가 뿌리를 내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 전문 인력들이 대규모 단속에 걸리며 사실상 강제 귀국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불법’ 낙인이 찍힌 이들은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공장을 짓고 설비와 안전을 책임지던 300여명의 필수 기술자였다. 현지 생산 라인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었지만 결과는 추방에 가까운 귀국이었다.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한국 기업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2년 전에도 조지아주 정부가 투자 성과를 자기 공으로만 여기고 정작 한국 기업의 기여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 경제의 활력을 만든 주체는 주정부가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었다. 한국에 세울 수도 있는 공장을 미국에 지으면서 현지 일자리를 늘려준 결과였다.

자유무역을 내세우던 미국이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보호주의로 기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강화된 이민 단속 기조는 지금 더 거세졌고, 그 불똥이 한국의 전문 인력에게 튀었다. 사실 지난해부터 주요 대기업 임직원의 전자여행허가제(ESTA) 입국 거부 등이 속출하는 등 이상 신호는 있었다.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들어온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이 근로·비자 제도 개선을 요구할 명분은 충분하다.

2년 전 건설 현장뿐 아니라 가동 중인 공장도 방문했었다. 작업복 차림의 현지 청년들이 공구를 들고 활기차게 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생산직 교육을 받고 취업한 지역 출신들이라고 했다. 한국 대기업이 만들어낸 수만 개의 일자리는 그들에게 기회이자 축복이었다.

한국 국민도 ‘기업이 국익을 위해 미국에 공장을 세운다’는 믿음으로 그동안의 투자를 지켜봐 왔다. 이제 기업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전략적 투자자로서의 태도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기업이 쌓아온 성과가 존중받고,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역시 차제에 전문 인력과 주재원 비자 쿼터 문제를 명확히 짚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한국 기업이 움츠러들 이유는 없다. 미국이 진정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원한다면 돈과 현지 일자리뿐 아니라 사람까지도 환영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진짜 파트너십의 얼굴이다.

김민영 산업2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