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외교안보 플랜B의 모색

입력 2025-09-22 00:35

지난주 금요일 전해진 일본발 뉴스 하나에 눈길이 갔다. 일본 방위성이 설치한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에 관한 전문가 회의’가 핵 추진 잠수함 도입 검토를 건의하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방위상에게 제출했다는 소식이었다. 원폭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그동안 핵무기는 물론이고 핵잠수함 논의도 금기시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를 암시한다. 원자력 이용을 평화 목적에 한정하는 원자력기본법도 있는데, 핵 추진 잠수함이 과연 이에 부합하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 소식에 특별히 주목한 것은 일본에서 플랜B가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은 바가 있어서다. 일본이 생각하는 플랜B의 내용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증을 갖던 차였다.

플랜B란 플랜A가 작동하지 않게 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대안적 계획이라는 뜻인데, 일본의 플랜A는 미국과의 동맹에 의존하는 것이다. 미·일동맹은 전후 일본 안보의 기본 축을 이뤄왔으며, 미국에도 일본은 동아시아 동맹 체제의 가장 핵심적 파트너로 인식됐다. 따라서 일본의 플랜B 모색이 사실이라면 이는 일본 외교는 물론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중대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한 배경에는 구조적 차원의 원인과 정책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구조적 원인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에 따른 역내 세력 균형의 변화이며, 정책적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몰고 온 불확실성의 증대다. 두 요인은 서로 합쳐져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신뢰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는 아시아 동맹국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의심을 낳는다. 장기적으로는 쇠퇴를 겪고 있는 미국의 능력이 과연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이런 단기적 및 장기적 차원의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플랜B를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 내의 또 다른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인 호주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플랜B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이뤄져 왔다. 중국으로부터의 위협 증대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이 약해질 가능성을 전제로 호주가 독자적 방위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과 비교적 멀리 떨어진 호주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고슴도치 전략’을 채택하면 독자적 방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도 제출됐다.

다만 이런 주장은 아직 소수의견이며,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남반구에 떨어진 섬과 같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호주의 생존은 해상교통로 안전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자체 군사력만으로는 충분한 해양 안보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 제공 신뢰성 약화는 호주의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준다. 이런 가운데 호주는 역내외 중견국과의 네트워크 연대 강화를 통해 동맹을 대체까지는 아니어도 보완한다는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플랜B는 일본과 호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과 이민정책이 사전에 조율되지 못하고 충돌하며 빚은 우리 국민 구금 사태는 그런 의문을 더욱 키웠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훨씬 더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증대된 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일본이나 호주보다 훨씬 심각한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플랜B 논의는 핵 개발 여부에 국한됐다. 더 넓은 차원에서 다양한 방안을 포함하는 논의가 요청된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