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음이 보내는 신호

입력 2025-09-22 00:34

내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다. 어색하거나 난처한 상황일 때 크게 웃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게 됐는데, 어릴 때 별명 중 하나가 ‘포커페이스’였다. 즐거운 일에도 별로 웃지 않았고 슬픈 일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한 어른이 나를 보더니 “앞으로 사회에 나가 생활하는데 그렇게 무표정으로 있으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색한 나를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뒀던 것인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날부터 매일 조금씩 웃는 연습을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호탕하게 웃는 사람이 돼 버렸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원래 잘 웃나 보다 하는데, 오래 본 사람들은 내가 어색해서 웃는 것이라는 걸 금방 알아챈다. 웃음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세 들통이 난다. 침묵이나 무표정보다는 웃는 편이 어색한 분위기를 편하게 하는 것에는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가끔은 내 웃음이 여러 무늬의 천을 기워 만든 조각보 같다고 느껴지는 때도 많다. 그런데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내가 진짜 즐겁고 웃겨서 웃는 것인지, 어색해서 웃는 것인지 스스로 못 알아차리는 때도 많다. 그래서 반대로 애써 웃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웃지 않는다고 혹은 더 웃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만나는 것이 훨씬 정확하고 편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웃으면 웃는 대로, 웃지 않으면 웃지 않는 대로, 각자의 속사정과 마음과 감정이 있음을 인정해 주면 되지 않을까. 크게 웃는 버릇을 가진 내가, 누군가 어색하게 웃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애쓰는 마음을 보게 되는 것처럼. 밝은 웃음 뒤에 있는 슬픈 마음을 보게 되는 것처럼. 이제는 나에게 웃거나 웃지 않는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봐 주는 품이 넓은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안미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