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영업 무게중심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서 벤처 투자로 옮긴다. 부동산 쏠림을 완화하고 ‘생산적 금융’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다.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 투자금으로 기능해 생산적 금융을 지원 사격할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는 오는 12월 출범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제1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한국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금융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을 주도해 미래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금융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사·정책금융·자본시장 분야에서 대전환을 추진한다. 금융사 대전환의 핵심은 은행권 주담대 축소다.
새롭게 취급하는 주담대부터 ‘위험 가중치’ 하한선을 15%에서 20%로 높인다. 현재 각 은행은 대출을 내줄 때마다 부도율, 손실률 등을 바탕으로 위험 가중치를 산출해 자본비율에 반영한다. 주담대는 부도율과 손실률이 낮아 위험 가중치가 모든 대출 중 가장 낮다. 은행권이 열심히 팔더라도 자본비율에 미치는 악영향이 작다. 이에 위험 가중치 하한선을 5% 포인트 높여 주담대 취급 유인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현재 은행권의 신규 취급 주담대는 연간 270조원 수준인데 이 방안이 정착되면 10%가량인 27조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400%나 적용하던 벤처기업 등 주식의 위험 가중치를 250%로 낮춘다. 앞으로는 은행이 기업 주식을 보유하더라도 자본비율 하락 부담을 일부 덜 수 있게 된다. 다만 은행권이 이런 특례를 악용해 투기에 나서지 않도록 3년 내 되팔 목적으로 산 비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위험 가중치 400%를 계속 적용한다.
보험업계도 생산적 금융에 뛰어들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보험사는 은행의 자본비율과 유사한 건전성 지표인 ‘지급 여력 제도(K-ICS) 비율’을 중시하는데, 이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국채에 상당량을 투자하고 있다. 자본 규제를 고쳐 앞으로는 벤처캐피털(VC) 등 국채보다 수익률이 높은 생산적 분야에 투자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또한, 금융사가 생산적 금융 투자에 따른 위험을 너무 회피하지 않도록 검사·감독 시 면책조항을 만든다. 생산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금융사 임직원 핵심성과 지표(KPI)도 고친다. 금융위는 이런 방안을 통해 생산 투자 여력이 최대 73조5000억원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책금융 차원의 ‘노른자위’는 국민성장펀드다. 반도체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바이오, 2차 전지, 미래 자동차 등 한국 경제를 20년 이상 먹여 살릴 첨단 전략산업을 뒷받침할 마중물 역할을 할 예정이다. 이재명정부 5년간 첨단 전략산업에서만 500조원의 투자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30%를 국민성장펀드로 충당해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자본시장 측면에선 국민의 벤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도입하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유망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자신의 자산·사업을 증권화한 뒤 국민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토큰 증권(STO)을 제도화한다.
금융위는 각 과제를 담당할 전담 조직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이 위원장 주재로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꾸준히 열어 후속 방안을 주기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