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사회부 기자로 일하다 보면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취재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종종 있다. 기자는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고 생후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을 마련하려고 고물상에서 고철을 훔치다 붙잡힌 20대 아버지의 사건을 접하고 울컥했다. 21세기 선진국 문턱에 들어왔음에도 안타까운 생계형 범죄는 이어지고 있다. 2018년 3월 광주광역시에선 사흘 동안 굶은 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주차된 차에서 1400원을 훔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올 1월 서울의 한 마트에서 6500원짜리 생리대 한 개를 훔치다가 적발된 20대 여성도 있었다. 실직 후 생리대 살 돈이 없다고 했다.
딱한 사연엔 주변의 온정이 쏟아지곤 했다. 2011년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주경야독의 고된 생활을 하던 전주의 한 대학생이 영어문법책과 점퍼를 훔치다 붙잡혔다. 학생에게 격려가 쇄도했고 서점 측은 선처를 부탁했다. 2016년 배가 고파 부산의 한 경로당에 몰래 들어가서 쌀과 김치를 훔쳐 먹다 붙들린 청년에게 경로당 할머니들이 처벌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썼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듯 사소한 잘못도 죄라는 식의 대응이 갈수록 늘고 있어 씁쓸하다. 10여년 전 전북의 한 버스회사는 800원과 2400원을 납부 누락한 두 명의 기사를 해고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해엔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꽃 한 송이 꺾은 80대 치매 할머니에게 30배의 벌금을 요구해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 18일 전주지법 항소심 재판부 부장판사가 1050원어치 과자 절도 사건을 심리하기에 앞서 “각박하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북의 한 물류회사 협력업체 직원이 원청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초코파이(450원)와 커스터드(600원) 각 1개씩 꺼내 먹은 뒤 절도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직원의 고의가 있다며 벌금 5만원이 선고됐다. 많은 이들이 “재판까지 갈 일이냐”며 혀를 찼다. 초코파이 포장지엔 정(情)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데 정작 사회에선 정이 희박해지고 있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