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화 ‘하얀 풍선’(1995)으로 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왔었습니다. 그때 ‘이 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될 저력이 있다’고 생각했죠. 이번에 그 성장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최초의 아시아 감독이자 3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65) 감독은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기자회견장에서 국내외 취재진을 만나 30년 만에 부산영화제를 다시 찾은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부산에 처음 왔을 때 아름답고 활발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엔 방문 기간이 이틀로 짧아 관광객의 관점으로 부산을 바라보게 됐다”면서 “앞으로 아내와 함께 한국에 자주 와볼 생각이다. 한국의 해산물 등 음식 때문에라도 꼭 다시 오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상영하는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이 그해 부산영화제에 온 건 처음이다. 그의 방문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고(故) 김지석 전 부집행위원장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파나히 감독은 “김 전 부위원장이 생전에 내 영화를 좋아해 주셨다. 내가 출국금지를 당했을 땐 이란에 있는 집까지 와주셨다”며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이번에 부산에 와서 그가 영면한 곳을 다녀왔다”고 전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부산영화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핵심 역할을 하며 20여년간 수석프로그래머 등을 역임했다.
파나히 감독은 ‘하얀 풍선’으로 1995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이래 세계적 명성을 쌓아 왔다. ‘써클’(2002)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택시’(2015)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에 이어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란에선 탄압의 대상이다. 사회를 고발하는 반체제적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수차례 체포와 가택 연금, 영화 제작 금지, 출국금지 등을 당했다.
자신을 “사회적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파나히 감독은 어떤 억압의 상황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택시’ 제작 상황에 대해 “‘20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는데 ‘그럼 택시 운전은 해도 되겠지’ 싶었다”며 “택시 운행을 하면서 차 안에 카메라를 숨겨 몰래 찍었다. 나만의 방법을 찾았던 것”이라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후배 영화인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격려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회 고발성 내용을 다룬 ‘그저 사고였을 뿐’은 내년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프랑스 대표 작품으로 출품됐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에선 아카데미에 출품할 때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영화는 프랑스와 공동제작한 작품이어서 (이란의 허가 없이도) 출품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를 만들 수 없다면 우울감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으로는 “아내”를 꼽았다. 그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 아내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들어야 아내를 지키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내게 아무 힘도 없다”며 웃었다.
부산=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