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도 필요 없을 정도로 얘기가 잘됐다”던 대통령실의 한·미 관세협상 평가는 후속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80도 반전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공개된 타임지 인터뷰에서 “(미국 요구에) 그대로 동의했다면 저도 탄핵당했을 것”이라며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협상 상황을 묘사했다. 시한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 중심의 협상에 임하겠다는 뜻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는 협상에 대해 긍정적 평가만 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대화하고 양해하고 격려받았다”며 “결과는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8일 인스타그램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고 썼다.
하지만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익이 안 되는 사안에는 서명할 수 없다”며 미국 측 압박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런 기류 변화는 관세협상 후속 논의에서 나오는 미국의 과도한 요구 탓이란 분석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협상에 대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조선업 투자액을 제외한) 대미 투자금 2000억 달러를 우리가 어떻게 미국에 줄 것인지에 대한 요구만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안보 홀 패키지 협상도 옛날얘기”라며 “지금은 안보 등 다른 측면을 양보한다고 통상 부문이 풀리는 상황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후속 협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일본이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상황도 부담이다. 최근 러트닉 장관은 “일본은 계약서에 서명했다”며 우리 정부에 협정 수용을 직접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는 관세를 더 낼 수 있다”고까지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 주력인 반도체를 꺼낸 것도 그렇고, 미국이 한국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날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결국 이 대통령이 ‘탄핵’이란 단어까지 꺼낸 것은 미국 협상팀의 과도한 요구를 알리고, 국내 여론의 정서적 요소를 부각해 협상 레버리지로 삼으려는 전략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민석 국무총리 언급처럼 협상 결과는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할 수 있다”며 “무리한 협상안을 들고 가면 여야가 다 반대할 텐데, 그러면 탄핵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미국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도 “‘우리가 일부러 양보하지 않는 게 아니다. 미국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면 탄핵으로 갈 수 있다’는 현실을 미국 국민과 조야 지도자들에게 알리는 목적”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다만 인터뷰에서 북한과 관계 개선을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할 것인가를 묻자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면 그 상을 받을 다른 인물은 없다”며 유화적인 제스처도 취했다.
이동환 윤예솔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