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와 K패션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한류의 최전선에 있던 K뷰티는 C뷰티에 밀리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신 K패션이 중국 MZ세대를 파고들며 한류의 최전선에 올라탔다. 한국 패션 브랜드가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리 잡으면서 중국에서 K콘텐츠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국내 대표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중국 최대 스포츠웨어 기업 안타 스포츠와 손잡고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K패션이 한류의 다음 주자로 도약할 것인지 주목된다.
‘차이나 드림’ 도전하는 무신사
국내 패션업계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 의류의 대중국 수출액은 2020년 3억7512만 달러에서 지난해 5억4556만 달러로 약 45.4% 상승했다. 한국 특유의 트렌디하고 개성 강한 디자인, 그리고 스타들의 착용 샷 등을 통한 적극적인 소셜미디어 마케팅이 중국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에만 ‘이미스’, ‘레스트&레크레이션’ 등 10개 이상의 한국 패션 브랜드가 중국에 공식 진출하는 등 가파른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스는 상하이 화이하이중루에 첫 매장을 성공적으로 열었다. 레스트&레크레이션은 불과 4개월 만에 5개 매장을 잇달아 오픈하며 현지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상승 기류 속 국내 대표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무신사는 최근 중국 최대 스포츠웨어 그룹 안타 스포츠와 합작법인 ‘무신사 차이나’를 설립했다. 지분 구조는 무신사 60%, 안타 스포츠 40%로 이달 말까지 중국 당국의 승인 절차를 마치는 대로 온·오프라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중국이 K패션의 새로운 무대로 부상한 현시점이 무신사의 ‘중국 시장 공략 최적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타 스포츠는 이미 코오롱FnC, 휠라코리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의 막강한 영향력과 현지화 노하우를 증명한 바 있다. 코오롱FnC와 안타 스포츠가 각각 50% 지분을 보유한 합작법인 코오롱스포츠차이나는 리테일 기준 매출이 2023년 4000억원대 중반에서 지난해 75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1분기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배가량 증가하며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휠라코리아와의 합작법인 ‘풀 프로스펙트’ 역시 안타 스포츠가 85%, 휠라코리아가 15% 지분을 보유하며 성공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신사는 이미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K패션의 성지’로 통한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대림창고 매장은 올해 2분기 중국인 관광객 거래액이 전 분기 대비 3.5배 증가했다. 홍대 매장 역시 전년 대비 1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서울에서 운영 중인 외국인 특화 매장 5곳(강남·명동·성수·한남·홍대)의 합산 거래액은 120% 증가했다. 구매자의 40% 이상은 10~20대로 나타났다.
업계는 안타 스포츠가 무신사의 트렌드 선도력과 플랫폼 기반, 데이터 생태계에 주목했다고 본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최대 패션 플랫폼이 중국에 공식 진출하면서 K패션 시장 전체의 확장 및 성장 기대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단위의 해외 판로가 개척되면 중소 K패션 브랜드의 활동 무대 자체가 넓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뷰티 뜨자 고전하는 K뷰티
반면 뜨거웠던 K뷰티의 중국 시장 입지는 최근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 화장품의 중국 수출 비중은 2023년 34.7%(14.1억 달러)에서 올해 상반기 19.6%(10.8억 달러)로 급락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8% 감소한 수치다. 한국 브랜드의 압도적인 경쟁력이 입증된 기초화장품 부문에서 매출 하락이 두드러진다.
매출 하락은 현지 시장 축소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 산하 이니스프리는 지난 7월 중국 역직구 채널인 ‘티몰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 운영을 중단했다. CJ올리브영 역시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매장 운영을 담당했던 상하이 법인을 청산했다.
중국에서의 K뷰티 약세는 비단 ‘한한령’(한류 제한령)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C뷰티의 급부상과 현지 소비자들의 가성비 선호 심화, 그리고 치열한 경쟁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소비자들의 안목이 높아지고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지면서 K뷰티의 차별성이 퇴색된 셈이다. ‘쥬디돌’ ‘스킨티픽’ 등 C뷰티 브랜드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제품력으로 단기간 팬덤을 형성했다. 틱톡·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리뷰, 메이크업 연출, 언박싱 콘텐츠를 집중 노출하며 검색량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 색조 브랜드의 상륙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중국 뷰티 브랜드 ‘플라워 노즈’는 한국 공식 인스타그램을 열고 다음 달 자사 사이트 오픈을 예고했다. 화려한 색감과 공주풍 패키지를 앞세워 일본·미국 등에서 저력을 입증한 뒤, 입소문이 퍼져 한국에서도 직구 수요를 키워왔다. 2016년 설립된 플라워 노즈는 지난해 패션·뷰티 편집샵 미국 어반 아웃피터스에 입점하며 해외 매출 1억 위안(1950억원)을 돌파했다. 최근에는 중국 뷰티 대기업인 프로야로부터 시리즈B 투자를 받기도 했다.
국내 공급 과밀도 문제로 지적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화장품 책임판매업체 수는 2019년 1만5707곳에서 지난해 2만7932곳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동시에 중국산 위조품까지 확산하며 브랜드 신뢰도 훼손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관세청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위조품 중 94.4%는 중국산이었다. 지난 17일 열린 K뷰티 산업 육성 및 수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연재호 대한화장품협회 상근부회장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K뷰티 위조품이 급증하고 있다”며 “브랜드 보호를 위해 세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