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지노박 (20) 내 아이 키우며 깨달은 아버지의 사랑 “존경합니다”

입력 2025-09-19 03:04
뮤지션 지노박의 아버지 박훈종 목사와 어머니 이혜옥 사모가 2004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지노박 제공

사람은 좀 여유가 있어야 주변 사람이 편하고 좋다. 나의 아버지는 참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 아침 식사는 오전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로 정해 두고 평생 단 한 번도 5분 이상 늦으신 적이 없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아침 식사 후 3㎞를 걷는 습관을 94세까지 이어가셨다. 주일 예배는 오전 11시였지만, 아버지는 오전 9시부터 정장을 차려입고 거실 의자에 앉아 자녀인 우리를 기다리셨다. 그 모습에 우리 형제들은 늘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왜 저렇게 사실까” 투덜거리기도 했다. 엄마도 내게 말씀하셨다. “아빠가 목사님이라 감사하지만 가끔은 차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셨으면 좋겠어.”

아버지는 평생 검소했다. 양복 몇 벌, 구두 몇 켤레로 일생을 보내셨고 본인을 위해 돈을 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목회와 가정 외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러 대화는 늘 어색했지만 주일 저녁마다 거실에 가족들과 모여 앉아 찬송가 부르며 기도하실 땐 목소리가 유난히 따뜻했다. 아버지는 내 음악적 재능을 일찍 알아보셨고 내가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원하는 곡을 자유롭게 연주하는 뮤지션의 길을 택했다. 나중에 하와이에서 연주 활동이 왕성할 때 부모님을 초대해 펜트하우스 발코니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아버지, 저 이제 연주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나는 아버지가 웃으며 격려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네가 얼마나 피아노를 잘 치는지 잘 모르겠구나.” 그 순간 서운함과 원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내가 찬양사역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막내 지노가 연주를 하면 미국 사람들이 다 일어나 기립박수를 친다니까요.” 속으로만 듣고 싶던 그 말, 아버지 입에서 직접 듣지 못한 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늘 나를 사랑하셨고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었다는 것을. 아버지와 나는 너무 달랐다. 이제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 관점으로만 아버지를 판단하고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2022년 이 땅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앙상하게 마른 손을 잡았을 때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지노야, 아빠는 지금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단다.” 평온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천국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손녀 예원이를 특별히 사랑하셨다. 평생 철저한 시간 관리로 살아오신 분이었지만 예원이에게만은 언제든 시간을 내셨다. 선물을 준비할 때도 아끼지 않으셨다. 예원이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예원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된 아버지의 사랑, 그 깊은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내 아내에게 “우리 가족 다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끝까지 가족을 위해 기도하신 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 몸부림치신 분, 그분이 바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 나의 아버지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