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 길 찾는 亞阿 학생들에 나침반이 되다

입력 2025-09-19 03:00
교수와 학생 그리고 교계 관계자들이 17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언더우드기념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GIT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며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인도에서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가족과 함께 “저주받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 친족들에게 파문당했던 아난드 라카(38)는 청년 사역을 하며 신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품게 됐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과 같은 인도의 뿌리 깊은 구조적 차별에 대한 신학적 해답을 찾고자 한국행을 결심했다.

필리핀 출신의 연구자 조이 비고르니아(39)는 삶을 위해 전공인 철학을 포기하고 경영학 박사 학위를 얻어 중국 대학 강단에 서 온 교수였다. 전 세계를 멈춘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에게 안락했던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넘어 식민주의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고국 여성들의 아픔을 연구하기 위해 종교철학을 공부하는 소명을 택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질문을 품은 아난드와 조이는 17일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 언더우드기념도서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산하 글로벌신학대학원(GIT)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신학적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같은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정신을 계승해 세계 기독교 리더를 양성한다는 GIT의 설립 목표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과거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 목회자들이 미국 신학대학원 유학 후 돌아와 한국교회를 성장시켰듯,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인재들이 한국에서 공부해 모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계에서 사역하도록 돕고 있다.

GIT는 지난 10년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32개국 출신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며 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 중 아시아(50명)와 아프리카(21명) 출신이 전체의 89%를 차지한다. 졸업생들은 목회(31명) 교육 및 연구(24명) 선교(11명) 등 각자 분야에서 사역하고 있다.


축사에 나선 김정석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은 “아프리카 출신 GIT 졸업생이 영국과 미국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을 직접 봤는데, 이것이 바로 GIT가 만든 기적”이라고 말했다.

아난드와 조이는 GIT만의 학풍이 자신들의 배움을 더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아난드는 “GIT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동료들과 토론하며 나의 신학적 지평이 크게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다”며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 자체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배움의 장”이라고 말했다. 조이도 “GIT는 ‘당신은 정말 기독교인이 맞는가’라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불편한 질문조차 자유롭게 던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며 “교수들은 생각을 통제하는 대신 모든 관점을 나누며 함께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아난드의 관심은 GIT에서 신학 연구를 심화하면서 ‘기후 정의’로 확장됐다. 그는 ‘창조 세계를 돌보는 책임’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인도의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한다. 그는 “인도에서는 물 부족과 같은 기후 위기의 피해가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에게 집중된다”며 “신앙은 바로 이처럼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문제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철학을 전공하는 조이는 자신이 속한 필리핀 원주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는 여성들이 함께 밭을 일구는 공동 노동과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적 가치와 지혜에 주목한다. 그는 “여성들이 땅을 일구는 행위 자체가 땅을 창조한 신과의 신성한 관계를 맺는 일”이라며 “거대 담론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언어로 신앙을 재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10주년 기념식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미래를 기약하는 자리였다. 손달익 서울교회 원로목사는 “과거 세계 교회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교회가 이제 그 빚을 갚고 있다”고 축하했다. 김현숙 연합신학대학원장은 환영사에서 “GIT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계를 잇는 희망의 공동체가 됐다”고 지난 10년을 평가했다. 다양한 국적의 GIT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네(We’ve come this far by Faith)’를 합창하면서 지난 여정을 자축했다.

인천=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