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선출권력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25-09-19 00:38

‘선출된 파워’ 자부심 크겠지만
안 찍은 국민 더 많은 것도 사실
‘직접 선출’과 ‘직접 거부’ 공존

0.7%p 승리에 세상 다 가진듯
불통의 국정 일삼다 몰락한 尹
李정부, 절제와 포용의 국정 절실

선출권력의 힘자랑은 이명박 정권 때 극에 달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531만표로 87년 체제 이후 역대 최대 격차로 승리했기에 선출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이듬해 4월 총선에서 집권 한나라당은 153석을 차지했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쳤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정권은 막강한 선출권력으로서 국정이든 입법이든 마구 힘을 휘둘렀다. 531만표 차이와 과반 의석이 빚어낸 ‘선출의 힘’은 만능키 같았다.

그 정권은 2009년 7월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을 안겨주는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했다. 민주당이 본회의장 출입문을 쇠사슬로 봉쇄하고, 의원들이 등산용 자일로 서로를 묶어 의장석을 에워싸는 등 반년 넘도록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그해 12월에는 22조원이 드는 4대강 정비 사업 예산도 날치기 처리했다. 민주당이 환경과 미래 세대와 관련된 일이니 신중하게 추진하자고 요청했지만 정권은 엄청난 표 차이로 밀어준 것은 대선 공약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라는 국민의 뜻이라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도 스스로에게 부여한 선출권력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정권은 제1야당 대표를 2년간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했다. 민주당에선 ‘아무리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그 선출권력은 총선에서 참패해 여소야대 정권이 됐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역대 처음으로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행사장에서 제1야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만나도 제대로 인사 한마디 안 했다. 국회 의석은 야당이 더 많아도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는 ‘선출의 격’이 다르다는 인식이 강했다.

선출권력은 선거에 의해, 국민에 의해 선출됐지만 내용을 뒤집어보면 결코 제왕적이어선 안 되는 권력이다. 이명박 정권은 대선에서 48.2%를 득표해 탄생됐지만 동시에 51.8%의 국민이 지지하지 않은 정권이다. 윤석열 정권도 48.56%를 득표했지만 그 나머지 국민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거부감이 강했다. 민주당은 ‘고작 0.73% 포인트 차이면서 세상 다 가진 듯 횡포를 부린다’고 비꼬았다.

선출권력이라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국민을 깡그리 무시하라는 권한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민 절반 이상이 지지하지 않은 권력이다. 49% 득표 중에는 이 대통령이 좋아서라기보다 상대 후보가 너무 형편없어서 할 수 없이 선택했거나, 지금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쩌면 잘 할 수도 있겠거니 미심쩍어하며 찍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선출권력의 진성 지지율이 국민의 3분의 1인 33%를 넘길 수 있을까.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선출권력은 반대 진영을 늘 헤아려 균형 있게 국정에 임해야 한다. ‘직접 선출’됐기에 권력서열이 앞선다는 자부심 못지않게 절반쯤의 국민이 선거 때 ‘직접 거부’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국회 제1당이긴 하지만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한 표가 합쳐져 100석 넘는 의석이 만들어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당 의원 개개인의 지역구에서도 그들을 찍지 않은 국민들이 숱하게 많다.

그런 사실을 되새긴다면 선출권력임을 함부로 자랑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걸 내세워 스스로 권력서열의 우위를 얘기하는 것은 또 얼마나 겸연쩍은 일인가. 입법부와 행정부를 다 장악한 이명박 선출권력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쇠사슬과 자일로 막아섰던 과거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 정권은 횡포였고 지금은 ‘국민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내로남불이다. 국정이든 입법이든 지금 하는 일이 올바른지, 올바르다고 해도 과정이나 방법이 너무 거칠지 않은지, 지금 하는 일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국민의 상처나 상실감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추해야 한다. 진짜로 모두의 대통령이고 국민주권정부라면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국민의 주권을 존중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출권력은 ‘잠시 위탁받아 대리하는’ 것이기에 권력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 막 쓰다보면 남용되기 십상인 게 그 권력의 속성이고, 그 말로는 참담했다. 이재명정부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고 겸손하고 절제된 권력 행사로 온 국민을 아울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