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교회, 이념적이어야 하는가

입력 2025-09-19 00:36

최근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발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가운데 극우 성향을 보인 비율이 22%였다. 기독교인 5명당 1명은 극우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전체 비율과도 유사한데, 몇몇 종교 지도자의 극우적 행보와 발언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한국교회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개인의 신앙적 신념이 극단적 정치 행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는 보수적·진보적 측면이 상존한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얼마나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과 소통하고 공감하셨는가. 결코 예수님은 권세자와 부한 자들 편에 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약자를 배려하고 소외계층을 우선시했다. 물론 우리가 성경의 가치와 진리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보수적이어야 한다. 나 또한 동성애 차별금지법, 이슬람 스쿠크 등 교회 생태계를 위협하는 악법들을 반대하고 막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지킨다고 우리의 사고와 신앙이 지나친 우편향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 정파적 우편향과 사상을 우리의 신앙의 가치나 세계관으로 연결시켜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성경의 본질을 벗어나 어쩔 수 없이 극단적 우편향의 정치 영역과 마주치게 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경우에 따라 진보적일 수도 있고 보수적일 수도 있다. 물론 한국교회가 극단적 좌편향 이념에 매몰돼서도 안 된다. 성경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수 23:6).

과거 광주에서 정율성기념공원을 짓는 문제로 정치권 공방이 뜨거웠을 때 문정희 시인의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라는 시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얼굴에 눈이 한 개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캄캄한 절벽이다/ 어디로 갔을까/ 내 한쪽 눈/ 신이 사람을 만들 때/ 가장 정성을 들였을 것 같다는 눈/ (중략)/ 부패한 수족관 같은 TV뉴스 화면에서/ 한 눈 가진 사람과 두 눈 가진 사람이/ 서로를 병신이라 우기고 있다/ 나는 울었다/ 그런데 내 눈물은 어디에다 두나/ 좌파도 우파도 아닌 내 한쪽 눈/ 어디로 갔을까”

정율성기념공원은 한쪽 눈으로 볼 때는 일리가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때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시에 빗대어 피력한 것이다. 설령 그가 독립운동을 했어도 분명히 중공군이었고,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이다. 게다가 북조선 노동당에 입당해 6·25전쟁 당시 중공군 일원으로 참전했고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그 집안 후손이나 친척이 생가를 매입해 복원한다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국민 세금으로 기념공원을 추진한다는 것은 두 눈으로 볼 때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것을 강행함으로써 5·18 민주화정신이 훼손되고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닌 좌파 이념의 이미지로 인각되면 안 된다는 우려를 피력한 것이다. 더구나 당시 국민의 80% 가까이가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문 시인의 표현대로 한 눈이 아닌 두 눈으로 역사를 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나의 페이스북 글을 주요 일간지에서 다루고 어떤 일간지에서는 문 시인과 특별인터뷰를 해 거의 한 면을 채우는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한국교회, 이념적이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눈물은 어디에다 둬야 하는가?” 한국교회는 극단적 우편향, 극단적 좌편향의 이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념을 초월해 십자가의 복음,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복음 안에서의 포용과 관용, 정의와 평화를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밤길을 걸을 땐 별을 봐야 길을 잃지 않는다. 시대가 혼탁하고 어두울수록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분열과 갈등, 분노와 상처를 치유하는 빛과 소금이 되자.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